[목차] 李勝章 (1137 ~ 1191) == 개요 == 고려의 문신. 자는 질부(質夫). == 생애 == === 임관 전 === [[상주]] 경산부([[경상북도]] [[성주군]]) 출신. 친부 이동민(李棟民)은 개경의 사학에서 수학하고 을과에 등제해 관직이 권지감찰어사에 이르렀다. 그러나 이승장은 장성하기 전에 부친을 여의었고 이승장의 모친은 의식(衣食)을 해결하기 위해 [[재혼]]한다. 이승장의 [[의붓아버지]]는 집안이 가난했기에 이승장이 친자식과 같은 일에 종사하기를 바랐는데, 이승장의 모친이 고집하기를, >첩은 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백주(栢舟)에 부끄럽게 됐습니다.[* 백주는 [[시경]]에 나오는 시로 지아비를 잃은 여인의 지조를 노래한다. 백주에 부끄럽다는 것은 지조를 지키지 않고 재가했음을 뜻한다.] 그러나 [[유복자]]는 다행스럽게도 이제 소년(成童)이 되어 학문에 뜻을 두고 있으니, 반드시 그 아버지의 본래 문하(徒)에 돌아가게 함으로 유업을 잇게 해야 합니다.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지하에서 전 남편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?[* 妾以衣食故見愧栢舟. 然其遺腹幸今成童志于學, 必宜投屬厼父本徒, 俾踵遺塵. 若不厼, 則吾何面復見先夫於地下.] 라고 하니, 이승장은 모친의 결단 덕분에 [[개경]]으로 상경해 부친이 수학하던 문헌공도[* [[사학 12도]]의 하나로 [[문종(고려)|문종]] 말 문헌공 [[최충]]이 세운 사립학교.] 솔성재(率性齋)에 입학하게 된다. 어려서부터 글로 이름을 날렸고 훗날 관직이 추밀원사에 이른 김평(金平)은 이승장의 학교 친구였는데, 둘의 우정은 수학을 마친 이후에도 계속돼 후일 김평이 말하기를 '가장 두텁게 아는(知最厚)' 사이였다고 할 정도였다. 이승장은 [[김부식]]의 아들 [[김돈중]]의 문생으로 의종 22년(1168) 봄의 진사시에서 2등으로 선발된다. 김돈중은 문하에 있는 이승장을 아꼈지만 장원 급제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는데, 같은 해 가을에 과거에 (장원으로) 급제한 이후에는 "내가 과거에서 사람을 얻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구나."[* 吾擧得人, 可見於此.]라며 기뻐한다. === 임관 후 === 이승장의 임관 초기는 [[무신정변]] 발발과 비슷한 시점이다. 명종 2년(1172) 관성현[* 이승장의 고향 경산부에 속한 현이다.]의 현위로 부임했는데 이듬해인 명종 3년(1173) 여러 군에서 '묵은 원한을 갚기 위해' 수령을 죽이는 소란이 일어난다. [[고려사절요]]를 참조하면 이 해 겨울 10월부터 3경 4도호 8목부터 군현, 관이나 [[역참]]에 이르기까지 무신들이 지방관으로 임용됐는데, 이들이 전임 문신 수령들을 [[사적제재|사적으로 제재]]한 것으로 보인다. 무신의 그림자는 이승장이 부임해있던 관성현에까지 드리웠으나 평소에 아꼈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변호함으로 이승장은 목숨을 건진다. 이승장은 그 길로 가족을 데리고 낙향해 경서, 사서를 읽으며 은거한다. 이승장이 관직에 돌아온 것은 [[정중부]]의 계략으로 [[이의방]]이 죽임을 당하고 4년 뒤, 정중부가 집권중이던 명종 8년(1178)의 봄이었다. 상경한 이승장은 직사관에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흥위위녹사참군 겸 권직한림에 이른다. 명종 13년(1183) 서장관으로서 [[금나라]]에 사신으로 가는 기거랑 최효저를 따라갔으며, 그 공으로 대관승 겸 동문원녹사가 된다. 이후 사문태학박사를 지내고 또 관직이 여러 번 바뀌어 [[선종(고려)|태자]]를 보좌하는 첨사부사직에 이른다. 명종 21년(1191) 겨울의 정기 인사에 권지감찰어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3월에 감찰어사[* [[어사대]]([[사헌부]])의 종6품 관직으로 정원은 10명.]가 된다. 이승장은 부친이 생전에 오른 권지감찰어사에 임명된 뒤 명종 22년(1192) 2월부터 [[중풍]]을 앓았다. 병은 깊어졌고 9월 초하루에 55세의 나이로 사택에서 죽는다. 같은 달 15일 불교 의례에 따라 화장됐고 명종 23년(1193) 4월 24일 불일산 북부 기슭에 장사된다. 이승무의 아들들은 기거랑 지제고에 있던 부친의 벗 김평을 찾아가 묘지명을 지어줄 것을 부탁한다. == 가족관계 == * 부: 이동민 * '''본인: 이승장''' * 처: 조씨 * 아들: 이송무 * 며느리 * 아들: 이백중 * 며느리: 오씨 사의서령을 지낸 조씨의 딸과 결혼해 4남 2녀를 둔다. 장남 이송무는 진사시에 급제하며 차남 이백중은 병과에 급제한다. [[분류:성주군 출신 인물]][[분류:경산 이씨]][[분류:1137년 출생]][[분류:1191년 사망]][[분류:고려의 인물]][[분류:신경질환으로 죽은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