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대한민국 학술원 회원)] 李崇寧 [[1908년]] ~ [[1994년]]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국어학자. 본관은 [[연안 이씨]]이며 호는 심악(心岳)이다. 중세 국어의 모음 체계 연구에 힘쓴 국어학자로, [[진단학회]] 상임 이사 및 국어학회장 등을 지냈다. == 생애 == 1908년 한성 출생. [[경복고등학교|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]], [[경성제국대학]] 예과 및 [[경성제국대학]] 법문학부 문학과(조선어문학전공)를 졸업하였다. 졸업 후 [[해방]] 전까지 평양사범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면서, 국어학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. 대학 예과 시절에는 [[허난설헌]]에 대한 논문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하는 등 국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, 학부 진학 시에는 [[사학과]]를 전공으로 택하였으나, 재학 중 언어학자였던 고바야시 히데오의 영향으로 음운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문학과(조선어문학전공)로 전과하여 "조선어의 Hiatus현상 고찰"이라는 논문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. 평양사범학교 재직 시절 [[진단학회]]의 학회지 진단학보에 국어 음운론에 대한 논문을 다수 기고하였다. 특히 [[아래아]]의 음가와 모음 체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였고 당시의 연구 성과는 해방 후인 1949년 "조선어 음운론 연구 제1집 : 아래아 음고"로 편찬된다. 1945년 해방이 되면서 [[경성대학]] 예과 및 법문학부 교수로 임용되었으며, 경성대학이 [[서울대학교]]로 개편되자 동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된다. 이 시기 외솔 [[최현배]]와 아래아의 음가를 두고 학술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.[* [[최현배]]는 아래아의 음가를 ㅏ와 ㅡ의 사잇값으로 보았으나, 이숭녕은 ㅏ와 ㅗ의 사잇값으로 보았다.] 1994년 타계하였다. == 평가 : 실증적 국어학의 정립 == 이숭녕은 [[소쉬르]]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, 국어학에 있어서도 [[국수주의]]적 오류에 빠지지 않고, 과학적, 실증적인 국어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. 이에 따라 외국어 학습 및 비교언어학에 입각한 연구 태도를 견지할 것을 강조하였다. [[분류:언어학자]][[분류:문학 교수]][[분류:연안 이씨]][[분류:1908년 출생]][[분류:1994년 사망]][[분류:경성제국대학 출신]][[분류:서울특별시 출신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