* [[정치인/목록]] [[파일:이세규 의원.jpg]] 李世圭(1926 ~ 1993) [목차] == 생애 == [[대한민국]]의 [[군인]]이자 [[정치인]]이며 1926년 [[충청남도]] [[공주시]]에서 태어났다. [[육군사관학교]]를 7기로 졸업하고 [[한국전쟁]] 당시 초급 장교로 최전선을 누빈 참전용사이다. 이후 국방대학원을 수료하고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[[장군|별을 달 정도로]] 능력도 있었지만, 무엇보다 이세규는 고급 장교들 치고 부패와 횡령에 손을 대지 않은 자들이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청렴결백한 군인이었다. [[대령]] 시절에 매월 자신의 봉급 절반을 불우이웃을 위해 썼는지라 어려워진 집안 살림 탓에 손님이라도 오면 항상 대접하는 것은 [[콩나물국]] 한 그릇 뿐이어서 [[콩나물]] [[대령]]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. 비록 일찌감치 장군이 되었어도 갈수록 장기집권에 관한 야욕만 강해지던 군사정권에 회의를 느끼고 [[3선 개헌]]에 대해 완곡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가 [[박정희]]에게 밉보인 이세규는 결국 [[소장(계급)|소장]] 진급에서 미끄러진 후 1969년 [[제11기계화보병사단|11사단장]] 직을 끝으로 자진해서 [[준장]]으로 예편하였다. 군문을 나선 이세규는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에 입당하여 정치를 시작했고,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이던 [[김대중]]의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며 군 장성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김대중의 편을 들었다. 무엇보다도 이세규는 당시 야당으로서는 가뭄에 단비같은 국방 안보 전문가이기도 했다. 1971년 [[제8대 국회의원 선거]]에 전국구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, 의원 재직 중 [[실미도 사건]]의 진상을 처음으로 밝혔다. 당시 정부는 이 사건이 터지자 [[684부대]]를 북한이 보낸 무장공비라고 발표했지만, 이세규가 684부대는 사실 [[대한민국]] 정부가 [[김일성]]을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파 비밀부대 라는 정보를 입수하여 이를 발표하면서 정부의 무장공비 운운은 거짓말임이 탄로났다.[* 훗날 실미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때 이미 사망한 후라 이세규 의원의 비서가 대신 인터뷰를 했다.] 이 폭로 때문에 이세규 의원은 [[박정희]]에게 요주의 인물로 단단히 찍혔고[* 사실 이 폭로 외에도 박정희 정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해 왔는지라 관계가 좋을 리 없었다. 이미 상기한 바와 같이 이세규는 현역 군인 시절에 3선 개헌에 대하여 적극 반대를 들기도 했고...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 박정희는 이에 야당 국회의원 리스트를 직접 작성하여 보안사령관 [[강창성]]에게 제시하면서 모조리 잡아들여 유신 체제를 지지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는데 강창성이 '''"각하, 지금이 비록 [[계엄령|계엄]]중이라고 해도 보안사 수사관들이 능수능란한 정치인들을 제대로 수사하긴 어려울 테고 무엇보다도 이 사람들을 전부 잡아들이면 국민들은 정치적 보복이라고 인식하지 않겠습니까?"''' 라며 일부 온건한 이미지의 인물은 빼자고 하자 박정희는 "그럼 임자가 알아서 하라"며 허락하였고, 고령의 [[윤길중]]과 [[4.19 혁명|4.19]] 세대의 상징성이 있는 [[이기택]]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. 그러나 "이세규 의원은 군에서도 명망높은 인물이라 체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"는 강창성의 말에 박정희는 '''"이세규만큼은 안돼! [[김대중]]에게 붙어먹은 아주 악질이야!!"''' 라면서 격한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.] [[10월 유신]]이 선포된 직후 이세규 의원은 [[조윤형]], [[김상현(1935)|김상현]], [[강근호]], [[류갑종]], [[김경인]], [[김녹영]], [[김한수(1935)|김한수]], [[조연하]], [[최형우(정치인)|최형우]], [[나석호]], [[박종률]] 등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. 수사기관에서 풀려난 이후 그는 바로 정계를 떠났고, 여생을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린 끝에 1993년 7월 24일 [[국군수도병원]]에서 별세했다. 향년 67세. == 이야깃거리 == * 이세규가 사단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아내와 자녀들이 면회라도 갈 때에는 "민간인이 사병들을 먹일 식량을 축낼 수 없다" 라면서 가족들이 먹을 쌀이나 부식은 직접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. 이러니 군용차량 탑승 같은 것은 언감생심(焉敢生心) 이었고 가족들은 한 겨울에도 쌀자루를 지고 버스터미널 에서 사단장 관사까지 수 km 길을 걸어가야 했다. * 어느 날 군수참모가 이세규 사단장의 아내에게 차비를 보탠 것이 들통나는 바람에 군수부서 전체가 검열을 받을 정도로 노발대발 했다고 한다. 그러면서도 이세규는 매년 연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사단 장교들에게 [[청주(술)|청주]] 댓병을 돌리는 등 부하들에게 어느 정도 인심을 쓰는 면도 있었다. * 하루는 이세규가 저녁상을 물리고 [[당번병]]에게 "오늘은 못 보던 나물이 있더라"며 물으니 당번병은 "쌀이 조금 남았길래 시장에서 나물과 바꿔왔습니다" 라고 자랑스럽게 답했는데, 이세규는 '''"네 이놈, 나라의 쌀을 팔아서 반찬을 사왔다고?!"''' 라며 불같이 화를 내며 회초리로 당번병의 종아리를 쳤다고 한다... ~~그나마 [[영창]]에 안 보낸 것이 다행인듯~~ == 선거이력 == || 연도 || 선거종류 || 소속정당 || 득표수(득표율) || 당선여부 || 비고 || || 1971 || [[제8대 국회의원 선거]] ([[전국구]] 국회의원) ||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 || - || '''당선''' || || [[분류:대한민국의 군인]][[분류:대한민국의 정치인]][[분류:공주시 출신 인물]][[분류:군인 출신 정치인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