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명사)] || 성명 ||이성량(李成梁) || || 출생 ||[[1526년]] || || 사망 ||[[1615년]](89세) || || 자 ||여계(如契) || || 호 ||인성(引城) || || 국적 ||[[명나라]] || || 출생지 ||[[랴오닝성]] 톄링 || [목차] == 개요 == [[명나라]] 후기의 무관이다. 요동 총병관으로서 요동 일대를 통괄, [[여진족]]을 다스렸다. == 생애 == 본관은 [[성주 이씨|성주]]. 자는 여계(如契). [[고려]] 전객부령 이천년의 6대손이다. 이천년은 [[이조년]]의 친형이다. 이성량의 5대조 이승경이 [[원나라]]에서 요양성참정 등의 벼슬을 지냈고 [[고려]]에서는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. 이승경의 아들 이영(李英)은 중국에 정착하게 되었다. 이영의 4대손이 바로 이성량이다. 요동 철령위의 지휘첨사의 자리를 대대로 세습하고 있었지만, 1570년에 요동총병이 되어, 당시 침입이 격렬했던 [[여진족]]에 대한 방어에 임하게 되었다. 이성량은 군비를 확충하면서, 건주 여진, 해서 여진 등에 나뉘어 있던 여진족이 명과의 교역권을 둘러싸 싸우고 있는 것에 개입해 내부 분열을 도모한 것으로, 요동의 안정에 큰 공적을 올렸다. 이 시기, 이성량의 후원을 얻어 세력 확대에 성공한 것이 후의 [[천명제|청태조 누르하치]]이다. 오랜 세월에 걸쳐 요동을 통괄해, 지방의 실력자로서 할거 한 이성량은, 한편으로 군비의 유용 등 독직이나 전단이 많아, 1591년에 탄핵 되어 실직되었다. 잠시 복직했지만, 1608년에 파면되었다. 이후 1615년에 사망했다. == 기타 == * 소생으로는 [[임진왜란]] 때 [[일본군]]과 싸운 [[이여송]], [[임진왜란]]과 [[사르후 전투]]에 참가한 이여백(李如柏) 등 9명의 자식이 있는데, 당시 사람들은 그들 일가를 이가구호장(李家九虎將)이라 불렀다 한다. [각주] [[분류:1526년 출생]][[분류:1615년 사망]][[분류:명나라의 인물]][[분류:한국계 중국인]][[분류:성주 이씨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