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대한민국 역대 국방부장관)] [include(틀: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)] 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tablebordercolor=#34632a><bgcolor=#34632a><:>{{{#FFFFFF '''역임한 직위'''}}}|| ||<bgcolor=#FFFFFF><:>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[include(틀: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)] [include(틀:KBO/역대 총재)] }}} || [[파일:external/dimg.donga.com/6978942.1.jpg]] 李相薰 [[1933년]] [[6월 26일]]~ 1933년 6월 26일 [[충청북도]] [[청주시|청주군]]에서 태어났다. [[경기고등학교]]를 졸업하였다. [[전두환]], [[노태우]], [[김복동(1933)|김복동]] 등과 [[육군사관학교]] 11기 동기이다. 대위였던 1961년 [[5.16 군사정변]]이 벌어지자 전두환과 함께 육사 생도의 쿠데타 지지행진을 이끈 바 있다. 이후 [[제32보병사단|32사단장]], [[제3군단|3군단장]] 등을 거쳤다. 전두환 정권 때 [[한미연합군사령부|한미연합사령부]] 부사령관([[대장(계급)|대장]])을 지냈다. 전역 후에는 장관급인 국가안보회의 비상기획위원장에 임명됐다. 그가 장관급에 임명되자 [[하나회]]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. 이상훈은 군에 있을 때 하나회의 라이벌 조직이었던 청죽회의 회원이었기 때문이다. 이때 국방부 장관에도 하나회의 핵심, [[정호용]] 대신 비하나회인 [[이기백(군인)|이기백]]이 되었기에 불만은 더욱 컸다. 이상훈의 중용은 지나치게 커진 하나회의 목소리를 줄이기 위한 전두환의 포석이었다. [[파일:external/kookbang.dema.mil.kr/14921.jpg]] 노태우 재임 시에는 [[대한민국 국방부장관]]을 지냈다. 재임 중에 통칭 '818계획'으로 불리는 군 조직 개편안을 추진하여 [[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|합동참모본부]]를 종전의 군사자문 기구에서 육-해-공 3군의 작전부대에 대한 최고 지휘권을 행사하는 최고 군령기구로 강화했다.[* 818 계획은 [[1990년]] 국군조직법 개정으로 현실화되었고, 정호근 육군 대장이 3군 총괄 군령권을 행사하는 첫 합참의장에 취임했다.] [[1992년]] [[KBO]] 총재에 취임했다. 이후 [[2000년]]부터 [[2006년]]까지 재향군인회 회장을 지냈다. 재임 중 [[참여정부]]의 [[전시작전통제권]] 환수 추진이 논란이 되자 다른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.[* 이상훈은 국방장관 재임 중에는 작전권 환수 의사를 밝힌 바 있다. 이는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의 공약이었다.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이상훈, version=144)] [[분류:대한민국의 군인]][[분류: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]][[분류:1933년 출생]][[분류:청주시 출신 인물]][[분류:KBO 총재]][[분류:국방부 장관]] [[분류:경기고등학교 출신]] [[분류:육군사관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