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제2대 국회의원]][[분류:1903년 출생]][[분류:대한독립촉성국민회 국회의원]][[분류:경주 이씨]][[분류:하동군 출신 인물]][[분류:메이지대학 출신]] 李相慶 1903년 6월 7일 ~ ?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. 본관은 [[경주 이씨|경주]](慶州).[* 39세손 상(相) 항렬] 1903년 [[경상남도]] [[하동군]] 진답면(현 하동읍 읍내리)에서 태어났다.[[https://reunion.unikorea.go.kr/reuni/home/brd/bbsatcl/qna/view.do?id=4635&mid=SM00000143&limit=10&page=81|#]] 일본 [[메이지대학]] 법학부 법과를 졸업하였다. 광복 이후 수리조합 이사, [[대한독립촉성국민회]] 하동군 지부장을 역임하였다. 1948년 [[제헌 국회의원 선거]] 당시 [[대한독립촉성국민회]] 후보로 경상남도 제26선거구([[하동군]])에 출마하였으나 [[부산15구락부]] [[강달수]]에 512표 차이로 밀려 낙선하였다. 1950년 [[제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다시 [[대한독립촉성국민회]] 후보로 경상남도 제27선거구([[하동군]])에 출마하였는데, 당시 같은 선거구에 17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표가 많이 나뉘어졌고, 결국 17.52%(8,282표)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. 이후 [[6.25전쟁]] 때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었으나, 2005년 7월 [[평양직할시]] [[룡성구역]] 용궁1동의 '재북 인사[* 납북 및 월북 인사] 묘역'에 안치된 사실이 확인되었다.[[http://www.donga.com/news/article/all/20050727/8213658/1|#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