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)] [include(틀:장면 내각의 국무위원)] [[파일:external/rokps.or.kr/605.jpg|width=150]] 李炳夏 1913년 11월 18일 ~ 2000년 11월 2일 [[대한민국]]의 전 법조인, [[정치인]]이다. 1913년 [[경상북도]] [[문경시|문경군]]에서 태어났다. [[일본]] [[메이지대학]] 법학부를 졸업하였다. 이후 [[일제강점기]] 말기 [[고등문관시험]] 사법과에 합격하였다. 그리고 [[대구지방법원]] [[판사]]를 역임하다가 [[변호사]]로 활동하였다. 1950년 [[제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무소속]]으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무소속]] [[양재하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54년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국민당]]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자유당]] 윤만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58년 [[제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후보로 경상북도 [[대구광역시|대구시]] 을 [[선거구]]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6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같은 해 민주당 원내부총무에 선출되었다. 1961년 5월 3일부터 [[대한민국 법무부|법무부]] [[법무부장관|장관]]을 역임하였으나 [[5.16 군사정변]]으로 5월 18일 보름만에 경질되었다. 1963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[[중구(대구)|중구]]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공화당]] [[송관수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67년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 후보로 경상북도 [[김천시]]-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[[백남억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이후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였다. 1988년 대한노인회 [[회장]]에 선출되어 1994년까지 제8대, 제9대 회장으로 활동하였고, 1991년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. [[분류:대한민국의 법조인]][[분류:문경시 출신 인물]][[분류:진성 이씨]][[분류:제4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5대 민의원의원]][[분류:민주당(1955년) 국회의원]][[분류:1913년 출생]][[분류:2000년 사망]][[분류:고등문관시험 출신]][[분류:메이지대학 출신]][[분류:장면 내각/인사]][[분류:법무부 장관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