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대한민국의 군인]][[분류:군인 출신 정치인]] * [[대한민국 국군/인물]]. [[정치인/목록]] [[파일:external/tv03.search.naver.net/yonhapnews_33914247.jpg|width=150]] 李炳玉 1927년 04월 17일 ~ 2020년 6월 14일 [[대한민국]]의 전 [[군인]], 관료, [[정치인]]이다. 호는 진암(辰巖)이다. 제9대, 제10대 [[대한민국 국회의원]]을 역임한 [[익산시]] 출신의 [[채영철]]과는 친인척 지간이다. 1927년 [[전라북도]] [[부안군]]에서 태어났다. [[강경상업고등학교]], [[육군사관학교]] 7기를 졸업하고 [[대한민국 육군]] 장교로 복무하였다. [[중령]]으로 예편하였다. 196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무소속]]으로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송을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63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공화당]]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67년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69년 민주공화당 정책연구실장에 임명되었다. 1970년 3월 무임소장관에 임명되었다. 1971년 [[제8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당선되었다. 같은 해 다시 민주공화당 정책연구실장에 임명되었다. 1973년 [[제9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북도 부안군-[[고창군]] 지역구에 출마하여 친야 [[무소속]] [[진의종]]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. 다만 부안군-고창군으로 선거구가 획정된 것에 대해 민주공화당 내에서 김제군 출신 국회의원이면서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다른 거물 [[장경순(1922)|장경순]]의 존재로 인하여 생활권 측면에서 더 타당한 방안인 김제군-부안군, 정읍군-고창군으로 하지 않았다는 [[게리맨더링]]이라는 비판이 있었다. 같은 해 [[대한민국 국회]] 농수산위원장에 선출되었다. 1978년 [[제10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는 [[이호종(1929)|이호종]]에 밀려 공천 탈락되었다. 1980년 [[전두환]]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. 1983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. [[분류:부안군 출신 인물]][[분류:1927년 출생]][[분류:2020년 사망]][[분류:제6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7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8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9대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공화당(1963년) 국회의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