李範昇 1887년 8월 29일 ~ 1976년 9월 3일 [[대한민국]]의 전 [[친일반민족행위자]], [[정치인]]이다. 1887년 [[충청남도]] [[연기군]](현 [[세종특별자치시]])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[[전주 이씨|전주]][* [[광평대군]] 18세손, 시조 42세손 '範'자 항렬.][* 이 덕분에 [[http://rfo.co.kr.|전주이씨대동종약원]]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.]. [[일본]]으로 유학, [[나고야]]의 일본 제8고등학교, [[교토대학|교토 제국대학]] 법과대학 법률과, 교토 제국대학 대학원 법제사와 조선법제사 과정을 졸업하였다. 이후 귀국하여 경성도서관을 운영하였다. 1926년 9월 고등관 시험에 합격하여 [[조선총독부]]에서 근무하였다. [[8.15 광복]] 후 [[미군정]]기 때 [[서울특별시장|경성부윤]]을 지냈다. 1952년 [[이긍종]] 국회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연기군 [[재보궐선거]]에서 [[무소속]]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54년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자유당]] [[류지원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5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후보로 충청남도 [[대한민국 참의원|참의원]]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과 2008년 공개된 [[민족문제연구소]]의 [[친일인명사전]] 수록예정자 명단의 관료 부문에 포함되어 있다. [[분류:친일인명사전 수록자/관료]][[분류:친일인명사전 수록자/친일단체]][[분류:전주 이씨 광평대군파]][[분류:제2대 국회의원]][[분류:무소속 국회의원]][[분류: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]][[분류:1887년 출생]][[분류:1976년 사망]][[분류:교토대학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