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-3><table width=100%><tablebgcolor=#ffffff><tablebordercolor=#808080> {{{#113 '''[[조선군 훈련대|{{{#113 조선군 훈련대}}}]] 간부'''[* 대한제국으로 개칭되기 전에 없어졌기에 정확히는 대한제국군이 아니다. 후에 [[대한제국군 친위대]]로 개편되었다.]}}} || || 제1대대장[br][[이두황]] || 제2대대장[br][[우범선]] || 제3대대장[br][[이진호(1867)|이진호]] || [[파일:external/blogimg.ohmynews.com/1046604096.jpg]] 李斗璜 1858년 1월 11일 ~ 1916년 3월 9일 [[을미사변]]의 주동자 중 하나이자 '''[[친일반민족행위자|친일파]]'''. [[조선]], [[대한제국]]의 무신으로 [[일제강점기]]의 관료이다. [[1894년]]에 [[동학농민운동]]이 일어나자 장위영(將衛營) 대관으로서 진압에 참여하였으며 [[김홍집]] 친일 내각에도 참여했다. [[1895년]]에는 [[조선군 훈련대]] 제1대대장으로서 을미사변에 가담하였다. 이후 [[일본]]으로 망명했는데 동료였던 [[우범선]]은 [[고영근]]에게 살해당했으나, 이두황은 끝까지 살아남아 [[1907년]] [[순종(대한제국)|순종]] 즉위 때 귀국하였고, [[명성황후]] 시해에 대해 사면받았다. [[이토 히로부미]]의 총애를 받았으며, [[전라북도]] [[관찰사]]로 있으면서 [[정미의병]]을 제압하는 [[남한 대토벌 작전]]을 주도하는 등 죽을 때까지 친일 행적을 굉장히 많이 저질렀다. [[경술국치]] 이후에도 계속하여 전북도장관을 지내다가 1916년 58세의 나이로 죽었다. 독립운동가 출신의 경찰공무원이었던 [[차일혁]]이 1951년에 이두황을 부관참시하고자 그의 묘를 파헤쳤으나, 일본식으로 화장해 뼛가루가 든 항아리만 있었기에 뼛가루를 내던져버리고 항아리는 깨부쉈다고 한다. [[분류:대한제국의 인물]][[분류:온건개화파]][[분류:친일인명사전 수록자/관료]][[분류:친일반민족행위자/통치 기구]][[분류:조선군/군인]][[분류:대한제국의 군인]][[분류:조선의 반란자]][[분류:1858년 출생]][[분류:1916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