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table width=100%><table align=center><table bordercolor=#000000><-100><: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C60C30 20%, #003478)" {{{#FFFFFF ''' 이두용 감독의 수상 이력 ''' }}} }}} |||| ||<#ffffff><-100> {{{#!folding [ 펼치기 · 접기 ] ---- ||<-5><tablealign=center><table width=100%><tablebordercolor=#EDD200><#EDD200> {{{+1 '''{{{#white 역대}}}''' [[대종상|[[파일:daejongfilmawards_logo.png|width=120]]]]}}} || ||<#FFFFFF><:><-5> [[파일:daejongawards.png|width=25]] || ||<#EDD200><-5><:> {{{#white '''감독상'''}}} || ||<width=30%><#FFFFA1><:> ''' 제21회 [br] ([[1982년]]) ''' ||<#FFFFA1><:> {{{+1 → }}} ||<width=30%><#FFFFA1><:> ''' 제22회 [br] ([[1983년]]) ''' ||<#FFFFA1><:> {{{+1 → }}} ||<width=30%><#FFFFA1><:> ''' 제23회 [br] ([[1984년]]) ''' || ||<:> 이장호[br](낮은대로 임하소서) ||<:> {{{+1 → }}} ||<:>'''이두용[br]([[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]])''' ||<:> {{{+1 → }}} ||<:> [[정진우(영화 감독)|정진우]][br](자녀목) || ||<#EDD200><-5><:> || ---- ||<-5><table width=100%><#c0c000><tablebordercolor=#c0c000> {{{+1 '''[[백상예술대상|[[파일:백상예술대상_로고.png|width=100]]]] 영화부문 감독상'''}}} || || [[이원세]][br](1980) || → ||<#FFFFA1> '''이두용[br](1981)''' || → || [[이원세]][br](1982) || || [[배창호]][br](1985) || → ||<#FFFFA1> '''이두용[br](1986)''' || → || 변장호[br](1987) || || 김호선[br](1989) || → ||<#FFFFA1> '''이두용[br](1990)''' || → || 장길수[br](1991) || ---- }}} || [[파일:external/www.newsin.co.kr/15931_5129_1221.jpg]] [목차] == 소개 == 1941년 출생. [[한국]]의 원로 영화감독 중 한사람. 초기 액션영화 전문 감독으로 이름을 떨쳤고 후에 [[에로티시즘]]이 가미된 사극을 많이 연출했다. 1970년 당시 유행하던 통속 멜로물 '잃어버린 면사포'로 감독으로 데뷔했으며, 70년 대 초에는 당시의 한국 영화감독들이 대부분 그랬듯 저예산 액션영화를 연출했다. 이두용은 이 바닥에서도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유명한데, 그게 바로 재미교포 영화배우 [[한용철]]주연의 태권도영화 시리즈였다. 그는 이 태권영화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1974년 한 해에만 무려 6편(...)의 작품을 졸속으로 제작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. 하지만 본인은 기록이 잘못된 것일뿐 어떻게 일년에 여섯편의 영화를 제작하느냐며 발끈하기도 했다. 이후로도 계속해서 저예산 액션영화들을 만들었다. 그와 단짝이던 윤삼육이 각본을 쓴 액션영화인 [[돌아이]] 1,2편은 각각 1985년, 1986년에 나왔으며 후술하듯이 미국에서 촬영한 액션영화 침묵의 암살자도 이두용이 감독했다. 덤으로 이 영화는 뽕,돌아이 시리즈, [[아벤고 공수군단]] 등등을 촬영한 손현채가 촬영감독을 맡던 영화다. 이두용만의 개성있는 액션영화들은 이후 적잖은 한국 감독과 평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. 박찬욱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두용의 해결사와 피막, 최후의 증인 등을 언급했다. 아무리 그 바닥에서 노력해도 삼류라며 인정하지 않는 당시의 풍토때문에 액션영화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. 그말이 사실이었는지 주류로 장르를 전향하면서 이두용은 김성종 작가의 원작 [[최후의 증인]], [[물도리동]], [[초분]]등의 걸작을 감독하여 [[피막]]으로 [[베니스 영화제]] 특별상을, [[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]]로 [[칸 영화제]] 주목할만한 시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며 [*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칸에 초청받았다.]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. 주로 [[뽕]]같은 에로영화를 만들었지만, 의외로 건전한 가족영화도 만들었다. '장남'이라는 영화인데 [[한국영상자료원]] 유튜브([[https://www.youtube.com/KoreanFilm|링크]])에 업로드되어 있으니 감상해보자. 1988년에는 [[엑소시스트]] 1편에서 악령들린 소녀를 연기한 린다 블레어 주연 미국 B급 액션영화 침묵의 암살자([[https://www.google.co.kr/search?q=Silent+Assassins+1988&newwindow=1&hl=ko&tbm=isch&imgil=mL89vRLg5uNQAM%253A%253Bhttps%253A%252F%252Fencrypted-tbn1.gstatic.com%252Fimages%253Fq%253Dtbn%253AANd9GcRr_WFqqAMWaQrkSI2kUj5EUK_MO4zbPB8lFHeEnebzPLvgIsUm5A%253B558%253B400%253BV4hujhHpXfx0EM%253Bhttp%25253A%25252F%25252Fweb1.svldns.com%25252Fview%25252F0%25252Fae9cf70803f0dfedd52c120e9460e6db%25252Ffront.html&source=iu&usg=__vB7TtEagIY0noZodAH0CY4vgIQ0%3D&sa=X&ei=EN1tU6eDKIi1kgXrnIDYCw&ved=0CDAQ9QEwAw#facrc=_&imgdii=XxmxMLyCTHIf2M%3A%3BZnm1bcoQFNEM1M%3BXxmxMLyCTHIf2M%3A&imgrc=XxmxMLyCTHIf2M%253A%3BfPX_GCbUALWkjM%3Bhttp%253A%252F%252Fwww.covershut.com%252Fcovers%252FSilent-Assassins-1988-Front-Cover-56767.jpg%3Bhttp%253A%252F%252Fwww.covershut.com%252FDVD-Covers%252F56767-Silent-Assassins-1988-Front.html%3B596%3B400|Silent Assassins]])를 공동 감독하기도 했다. 하지만 평이나 흥행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. 90년 대에는 그다지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는데, 그의 액션영화 복귀작인 [[대작]]영화 [[위대한 헌터 G.J]]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했다. 2011년에는 [[이장호]],[[정지영]],[[박철수]]등의 감독과 함께 '마스터 클래스의 산책'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. 2019년 [[최후의 증인]] 복원판이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 상영되었다. 당시 검열로 잘려나간 장면들을 되살린 복원판은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명작이라는 평가다. == 연출작 일람 == * 1980년 [[최후의 증인]] * 1983년 [[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]] * 1985년 [[돌아이]] * 1985년 [[뽕(영화)]] * 1986년 [[돌아이]] 2 * 1987년 [[고속도로(영화)]] * 1988년 뽕 2 * 1992년 뽕 3 * 2019년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NrYAigDfHto|백년대계의 한국영화를 위한 처용의 살풀이]] [[분류:1941년 출생]][[분류:1970년 데뷔]][[분류:한국 영화 감독/ㅇ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