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관련 문서, top1=구결, top2=향찰)] [include(틀:다른 뜻1, other1=팔에 위치한 근육, rd1=이두박근)] [include(틀:한자)] [include(틀:한국어)] [목차] == 소개 == {{{+1 '''吏讀''' }}} 과거 [[한국어]]를 표기하기 위한 [[문자]] 체계로, [[삼국시대]] 때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최종 형태는 [[통일신라]]에 이르러 굳어졌다고 알려져 있다. 고대 [[일본]]에서 [[만엽집]]에 나오는 [[만요가나]]와 유사하게 [[한자]]의 음훈을 활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한다. 흔히 [[설총]]이 만든 표기체계라고 알려져 있으며, 이런 기록은 [[제왕운기]]나 [[대명률직해]](大明律直解) 등의 여러 고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[[최만리]]의 상소에서 드러나듯 [[조선왕조실록]]에서도 이두는 설총이 만들었다는 것이 조선시대에 이미 상식처럼 굳어져 있었다. 그러나 이런 방대한 차자 표기 체계를 한 개인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. 그리고 최근 [[경주 월성해자 출토 목간|고고학적 목간]]의 발견으로 이두의 완성이 최소 6세기 중엽으로 앞당겨 졌다. 설총은 이두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그동안 쓰이던 차자 표기법을 집대성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. 창제와 집대성의 차이는 [[한글]]로 치면 [[세종대왕]]과 [[주시경]] 선생의 업적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. 그에 따르면 이두를 가장 먼저 창제한 사람은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, 대부분의 문자가 그렇듯 서서히 자연발생했을 것이다. 한글처럼 누군가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게 오히려 세계사적으로는 특이한 경우. 현존하는 이두에 대한 금석문 자료가 있는 기록은 5세기 초반(412년)에 만들어진 고구려 [[광개토대왕릉비|광개토왕비문]]이 최초다. 해당 기록에는 한문의 어순과 다른 일종의 변체한문(變體漢文)이 쓰여져 한국어의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. 구체적으로 '지(之)'나 '상(上)' 같은 이두식 표현이 발견된다. 이두는 하급 관리들인 이서(吏胥)들이 행정 문서를 작성할 때 쓰였으며, 민간에서도 쓰였다. 공식적인 문서 행정에는 중국식 [[한문]]을 썼지만 [[6세기]] 중엽에 이미 [[신라]]인들은 (충분한 교육을 받은 경우) 자신들의 [[고대 한국어]]를 완벽한 이두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. [[훈민정음]]이 창제된 이후에는 이두의 사용 빈도가 비교적 줄었으나 하류 관료층(아전, 향리)들 사이에선 계속 사용되었으며, 고위층은 그냥 [[한문]]을 쓰고, 비격식적인 문서에서나 상민 이하는 한글을 썼다. 공식적으로는 1894년 [[갑오개혁]] 때 폐지되었지만, 비공식적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었다. 때문에 조선시대 관청, 가전문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반드시 이두를 알아야 한다. 넓은 의미의 이두는 [[구결]], [[향찰]] 등을 포함한 [[한국어]]의 한자 차자 표기법 전반을 이르지만, 좁은 의미의 이두는 [[한문]]을 '''우리말 어순'''대로 재조정한 후 조사나 어미와 같은 '''형식 형태소'''를 중간중간 삽입하는 방식의 한자 표기를 이른다. == 예시 == [[명나라]]의 법률인 《[[대명률]](大明律)》을 이두로 풀이해 둔 《[[대명률직해]](大明律直解)》에서 그 예시를 살펴보자.[* 대명률직해는 이처럼 [[한문]]과 이두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 이두를 처음 접할 때 용이하다. 20세기에 인쇄된 것은 이두 부분에 한자어 부분과 달리 윗줄이 쳐져 있어서 학습에 더욱 편리하다.] >《대명률》 원문: 背本國(배본국) >《대명률직해》 이두문: 本國乙 背叛爲遣(본국을 배반ᄒᆞ고) > ---- > [[http://dl.ndl.go.jp/info:ndljp/pid/1462946/30|대명률직해(1936년 교정본) 2. 십악(十惡) 3. 모반(謀叛), 24쪽(pdf 오른쪽)]] 《대명률》 원문은 당연히 당대 중국 문어인 한문 어순, 즉 '주어-서술어-목적어' 순으로 되어 있다. 이 경우엔 주어 생략에 서술어 배반할 배(背), 목적어 본국(本國). 반면에 《대명률직해》에서는 우선 한국어 어순인 '주어-목적어-서술어'에 따라 목적어 '본국(本國)'이 앞에 나오고 서술어 어근 '배반(背叛)'이 뒤에 나왔다.[* 원문에서는 '배(背)'라고만 되어 있지만 이두문에는'배반(背叛)'으로 되어 있다. 이두문에서는 때때로 어휘 자체도 당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조정되었다.] 거기에 목적격 조사 '을(乙)'이 '본국' 뒤에 붙어 있고,[* '乙(새 을)'의 음인 '을'을 빌렸으되, 실제 의미인 '새'와 상관없으므로 음가자.] 연결 어미 '-고'를 이용하여 접미사 '-ᄒᆞ다'를 활용한 형태인 '-ᄒᆞ고(爲遣)'가 '배반' 뒤에 붙어 있다.[* 첫 번째 글자는 '爲(ᄒᆞ다(하다) 위)'의 뜻인 'ᄒᆞ다'에서 어간 'ᄒᆞ-'를 빌렸고 실제 의미도 'ᄒᆞ다([[하다]])'와 관련이 있기에 훈독자, 두 번째 글자는 '遣(보내다 견)'의 음인 '[[고]](당시엔 '고'로도 읽었음)'를 빌렸고 실제 의미인 '보내다'와는 관련이 없기에 음가자.] 즉 이두는 실질 형태소는 음독하되 그 어순을 조정하였고, 여기에 음차 혹은 훈자로 된 형식 형태소를 삽입한 표기 방식이다. 또한 형식 형태소에 쓴 한자는 간략화하지 않고 가급적 원형대로 썼다. [[기미독립선언서]]의 문체에서 한글로 쓰인 부분을 전부 한자로 고친 문체를 생각하면 쉽다. 이두의 실제 사용례는 한국학자료포털의 [[http://kostma.aks.ac.kr/dic/dicMain.aspx?lang=ko&mT=C|이두용례사전]]을 참고하자.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한글 전 한국어 표기, version=111, paragraph=2.)] [[분류:한국어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