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이담명 승정원사초 1.jpg]] [[파일:이담명 승정원사초 2.jpg]] {{{+3 李聃命 承政院史草}}} [목차] == 개요 == [[조선]] [[현종(조선)|현종]]~[[숙종(조선)|숙종]] 시기 [[영남]] 남인을 대표하던 명신이자 문익공(文翼公) [[이원정]](李元禎,1622~1680)의 아들이었던 [[http://encykorea.aks.ac.kr/Contents/Item/E0043958|이담명]](李聃命 1646~1701)이 [[승정원]] 주서 역임 당시 [[승정원일기]]를 작성하고자 매일 임금의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하여 남긴 승정원[[사초]]. 현종 13년(1672) 6월 18일부터 숙종 1년(1675) 5월 8일까지 약 3년간 작성한 기록으로 총 161책이다. 현재 [[서울역사박물관]]에 소장되었다. == 내용 == 승정원사초는 [[승정원일기]](承政院日記)를 편찬할 때 사용되는 원고 격인 [[사초]](史草)류로, 승정원에서는 주서들이 매일매일 작성한 승정원사초를 중심으로 하여 기타 여러 장계, 편지, 당후일기, [[조보]] 등을 모아 한 달에 한 권 또는 두 권씩 승정원일기를 만들어 보관하였다. 이러한 승정원사초는 [[조선]] [[세조(조선)|세조]] 3년(1457)에 세조가 주서를 두 명으로 늘리고 춘추관의 기사관 역할을 겸하도록 하면서 무조건 기록을 철저히 남기라고 명함으로써 처음 작성했다고 한다. 실록의 사초와 동일하게 매달 승정원일기가 완성될 때마다 세초하여 없애는 것이 기본이었다. 현재 남은 승정원사초는 [[경상북도]] [[칠곡군]] 왜관읍 석전리의 광주이씨(廣州李氏) 종가에 세전되던 것으로, 현종~숙종 대의 주서였던 이담명이 남긴 글이다. 원칙대로라면 승정원일기가 만들어진 후 모두 세초하여 없애야 했지만, 어떠한 이유에선지 이담명은 자신이 적은 승정원사초 3년분을 그대로 남겨놓았다. 총 161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, 주서 한 명이 단 3년 동안 작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종실록(22권 23책)과 현종개수실록(28권 29책)을 모두 합친 분량의 3배 정도가 되고, [[조선왕조실록]] 전체 분량의 1/5에 달한다. 이러한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실록의 내용에 정식으로 들어간 이담명 승정원초서의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여, 당시 어마어마하게 방대했을 기록물 작성 문화를 유추할 수 있다. 승정원일기보다 더욱 원천적인 1차 사료로, 현종~숙종대의 정치상황을 매우 자세히 알 수 있고, 또한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의 뼈대가 되는 승정원 주서 초서 작성방법도 알 수 있다. 2007년에 칠곡의 문익공(文翼公) 이원정(李元禎)의 종가에서 이담명 승정원초서 및 고전유물 100여 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. == 번역 == 유감스럽게도 아직 번역 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. 이게 번역이 완료되면 현종, 숙종 때 벌어진 에송논쟁의 연구 흐름을 뒤바꿀 수도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서인데도 불구하고... == 바깥고리 == * [[http://blog.daum.net/gijuzzang/1128343|[서울역사박물관] : 광주이씨 이담명의 승정원일기 사초]] *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01&aid=0001248366|연합뉴스 : 현종ㆍ숙종시대 '승정원사초' 161책 완간]] *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3&aid=0000703478|뉴시스 : 17세기 승정원사초 161책 첫 공개]] * [[http://blog.naver.com/seoulmuse/220045602449|서울역사박물관 블로그 : 소장유물자료집2 (광주이씨가)승정원사초1 ;영인본]] * [[http://blog.naver.com/seoulmuse/220045603837|서울역사박물관 블로그 : 소장유물자료집2 (광주이씨가)승정원사초1 ;정서본]] [[분류:조선왕조실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