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제(765)의 역대 국왕)] ||<tablealign=center> '''왕호''' ||<(><white> '''제왕(濟王)''' || || '''성씨''' ||<(><white> 이(李) || || '''휘''' ||<(><white> 납(納) || || '''생몰연도''' ||<(><white> 759년 ~ 792년 || || '''재위연도''' ||<(><white> 781년 ~ 792년 || [목차] == 개요 == [[당나라]]의 장수이자, [[이정기]]의 아들로 아버지의 관직을 계임받아 치청절도사에 올랐으며 [[제나라]] 제2대 왕이다. [[제나라]]의 기반을 다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. == 생애 == 이납은 아버지 이정기를 항상 보좌하였는데 아버지 밑에서 청주자사와 조주자사를 맡아 후계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임했다. 781년, 4진의 난을 주도하며 당의 조주를 압박하고 [[대운하]]를 차단하던 이정기가 향년 50세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이납은 이정기의 죽음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주위사람들을 [[입막음]]했다. 이납은 이듬해인 782년에 국호를 [[제나라]]로 선포하고 아버지의 15주와 [[절도사]]를 계위했다. 그런데 이납과 함께 반당세력이었던 전열이 당군에게 포위당하자 이납이 곧바로 위준의 1천여 명 군사를 급파해 구원하도록 했다. 그러나, 하동절도사 마수가 이들을 무찔렀다. 이에 이납의 종숙부 이유, 이사진, 이장경 등이 당나라에 내투했다. 이납은 즉각 군대를 일으켜 이들을 공격하나 당 조정군이 여세를 몰아 반격하여 크게 패배했다. 궁지에 몰린 이납은 [[덕종(당)|당덕종]]의 번진 제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회서절도사 이희열과 주도, 왕무준 등이 당에 대해 동시에 난을 일으켰다. 당의 요충지인 변주를 공격하기도 했으며, 강회에서 상공하는 조운선단을 차단하는 등 활발히 당에 저항했다. 또한, 소금, 철, 주석 등을 생산하고 백관을 설치, 제왕을 두는 등 나름 국가의 모습을 이뤄가기도 했다. 아버지 이정기가 그랬던 것처럼 [[신라]], [[발해]]와의 교역권을 독점하여 부를 축적했다. 이로써 제나라가 소규모 [[왕국]]으로 자리잡았으며 당시 위박, 성덕, 노룡, 치청 중에서 가장 강성한 번진으로 군림했다. 이후 당나라에 순종하는 제스쳐를 취해 이희열을 진주에서 대파시키도 했다. 이에 따라 당 조정에서는 운주를 승격하여 대도독부로 승격시켜주기도 했다. 792년, 향년 35세에 졸했다. 슬하 5남으로 이승무(李承務), [[이사고]](李師古), [[이사도]](李師道), 이사현(李師賢), [[이사지]](李師智) 등이 있었다. [각주] [[분류:759년 출생]][[분류:792년 사망]][[분류:수당시대/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