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센고쿠 시대/인물]][[분류:일본사/여성]] [목차] == 稲姫 == [[파일:external/www.ogis.co.jp/uedakomatsu.jpg]] [[에도 시대]] 후기에 그려진 초상화. 1573년 ~ 1620년 3월 27일 [[혼다 타다카츠]]의 장녀이자 [[사나다 노부유키]]의 아내. 결혼한 뒤의 이름은 코마츠(小松). 이나히메(稲姫)는 [[아명]]이며, 오네이(於小亥)라는 아명도 있다.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로는, 못말리는 [[말괄량이]]로, 선을 볼 때 남편 후보들의 [[촌마게]]를 잡고 들어올려서 얼굴을 확인했다고 한다.(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B_usSY1uDU8|영상]])[* 1985년에 방영된 [[NHK]]의 신시대 역사극 [[사나다 태평기]]의 한 장면이다. [[부채]]로 턱을 올려 얼굴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온다.] [[사나다 마사유키]]가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를 우에다 성에서 바른 뒤, 두 집안의 화친을 위해 1586년에 정략결혼했다. 일설에는 사나다 마사유키가 '이에야스도 [[다이묘]]이고 나도 다이묘인데 왜 이에야스의 가신과 사돈을 맺냐'고 거절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나히메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서 시집 보냈다고 한다.([[도쿠가와 히데타다]]의 양녀라는 설도 있다) 맹장으로 이름난 혼다의 딸이라서 사나다 가문에선 우락부락한 여장부를 생각했으나 의외로 갸날픈 체구였다고 한다. 1600년 [[세키가하라 전투]] 당시에 서군에 적을 두기로 한 마사유키가 회군하면서 노부유키의 성인 누마타 성에 들려 손자 얼굴을 보고 싶으니 문을 열라고 했지만(아마 누마타 성을 칠 마음이었을 듯), 군중에 노부유키가 없는 것을 보고 의심한 이나히메가 노부유키가 있어야 성문을 열겠다고 활을 들이대서 그대로 물러났다는 일화가 유명. 과연 혼다 타다카츠의 딸. 다만 마사유키가 물러난 뒤 사적으로 아들과 함께 마사유키에게 찾아갔다는 말도 있어서 마음도 따뜻한 여성이었는 듯. 마사유키 부자의 유폐 후에도 어찌보면 정적인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따뜻하게 잘 돌봐 주었다고 한다. 고향의 음식을 철마다 챙겨서 보낼 정도로 세심하고 좋은 며느리이자 형수였다. 정략 결혼이었지만 금슬은 좋았다는 듯. 노부유키의 사이에서 2남 2녀가 있었다. 1615년 [[오사카 전투]] 당시 노부유키를 대신해 출전한 아들들이 [[사나다 유키무라|숙부]]에게 패하고 돌아오자 '충의를 보이기 위해 한 명이라도 죽었어야 했는데.'라고 말했다고 한다. 덧붙여, 그녀의 동생이자 [[혼다 타다카츠]]의 아들인 혼다 타다토모는 여름 전투 때 전사. == 대중문화 속 이나히메 == === [[전국무쌍 시리즈]] === [[이나히메(전국무쌍)]] 참조. === [[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]] === || [[파일:稲姫.jpg]] || [[파일:稲姫1.jpg]] || ||<-2>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|| || [[파일:대지이나히메.jpg|width=400]] || || [[노부나가의 야망 대지]] || [[노부나가의 야망 천도|천도]] PK 군웅패권 모드 클리어시 등장. [[노부나가의 야망 창조|창조]]에 오면 도쿠가와 쪽이든 사나다 쪽이든 전국전 관련으로 자주 등장한다. 특히 사나다 전국전에서는 바깥으로 나간 남편을 대신해 누마타 성을 지키며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막아버리고도 손주들을 몰래 데리고 가는 역사가 반영되어 둘 다 두 손을 들어버리게 하는 막강 [[며느리]]. 전법도 '조준사격'을 들고 나와 무력 수치도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부장으로 쓸모가 괜찮다. 군웅집결에선 아버지 및 일문들과 함께 [[카즈사]] 지역에 혼다 가문을 차려 나온다. 백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누가 [[혼다 타다카츠]]의 딸 아니랄까봐 사슴 뿔을 달고 나왔다. 최강 히메 무장 결정전에서 사나다 가 다이묘로 등장. 일문전 화실겸비의 용사에서 일러 교체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