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삼성전자)] ||<-5><tablebordercolor=#1428a0>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bgcolor=#1428a0><tablebgcolor=#fff,#1f2023> [br] [[파일:Samsung logo white.png|width=150]] [br] '''[[삼성전자|{{{#fff 삼성전자 대표이사}}}]]''' || ||<width=30%> [[이건희]][br]윤종용[br]이윤우[br][[이학수]][br]문병대[br][[진대제]] || {{{+1 }}} ||<width=30%><bgcolor=#1428a0> '''[[이건희|{{{#white 이건희}}}]]'''[br]'''[[이기태|{{{#white 이기태}}}]]'''[br]'''[[이학수|{{{#white 이학수}}}]]'''[br]'''{{{#fff 윤종용[br]이윤우[br]최도석[br]한용외[br]임형규}}}[br][[진대제|{{{#fff 진대제}}}]][br]{{{#fff 이상현[br]이상완}}}'''[br] '''[[황창규|{{{#white 황창규}}}]]''' || {{{+1 →}}} ||<width=30%> [[이건희]][br]윤종용[br]이윤우[br][[이학수]][br][[진대제]] || ||<-2><table align=right><table width=400><table bordercolor=#004494><table bgcolor=#ffffff,#2d2f34><height=40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7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002395 0%, #004494 20%, #004494 80%, #002395);" {{{#ffffff '''前'''}}}[[삼성전자|[[파일:SAMSUNG_white.png|width=100]]]] {{{#ffffff '''대표이사 부사장'''}}}[br]{{{#ffffff '''{{{+2 {{{#ffffff '''이기태'''}}}}}} | 李基泰'''}}}}}} || ||<-2><: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ilyoseoul.co.kr/26779_4364_0833.gif|width=50%]]}}}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 '''이름'''}}} ||이기태 (李基泰)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 '''출생'''}}} ||1948년 10월 6일 ([age(1948-10-06)]세)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 '''학력'''}}} ||[[인하대학교]] 전기공학과 || ||<bgcolor=#004494> {{{#fff '''약력'''}}} ||삼성전자 대표이사 부사장[br]삼성전자 사장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'''미스터 [[애니콜]]''' [[대한민국]]의 [[기업인]]. [[삼성전자]]에서 대표이사를 지낸 인물이다. == 생애 == 1948년 [[대전광역시]]에서 출생하였다. 1967년 [[보문고등학교(대전)]], 1971년 [[인하대학교]] [[전기공학과]]를 졸업하고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하였다. [[애니콜]]을 만들어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기 이전, 비교적 늦게 휴대폰 제조를 시작한 삼성을 급성장시키고 애니콜 신화를 열었다. 신경영을 선언하는 [[이건희]] 회장을 받들어 2,000명의 임직원이 지켜 보는 앞에서 500억 원어치 불량 핸드폰들을 망치로 산산조각내서 부셔버리는 일명 애니콜 화형식을 거행한다. 이후 품질주의로 선회하여 많이 생산하면서도 질적으로 우수한 핸드폰을 제조하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주력했다. 그 결과 [[삼성전자]]는 [[모토로라]]를 제치고 휴대폰 점유율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. 세일즈맨으로 시작해서 크게 성공한 사례이다.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퇴임을 한 것으로 '''추정'''된다. 비록 삼성전자 차원에서의 설명은 없었지만. 출근 거부 등의 트러블[[http://www.hani.co.kr/arti/economy/economy_general/186396.html|#]]이 있었고 이후 삼성전자를 퇴사하게 된다. 당시 [[http://m.sisakorea.kr/1722|뉴스에 따르면]] 아들이 조폭 청부 폭력 사건을 저질렀고, 이재용 체제로 전환되는 시점에 이 사건이 문제시돼 쫓겨난 모양. 퇴임 임원에게 제공되는 혜택도 스스로 거부했다고 한다. 퇴사 후 [[연세대학교]] 교수가 되었고, [[아이덴티티 탭]]을 만든 엔스퍼트사에 두 차례 대규모 투자를 했다. ~~ 근데 그 회사가 망해서...~~ 연세대 교수를 그만두었다는 [[http://news.joins.com/article/9643572|기사가 있으나]], 2015년까지 연세대학교 교수 자격으로 강연을 한 것을 보면 가짜 뉴스로 보인다. 다만 이후에는 기록이 없어 연세대학교 교수를 그만둔 것으로 보이며. 다시 경영인으로서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. == 이야깃거리 == [[이재용]]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임시 구속된 것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이 없는 경영인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[[http://www.asiae.co.kr/news/view.htm?idxno=2017082311250728701|입장을 밝혔다.]] [[분류:삼성전자와 연관된 인물]] [[분류:대한민국의 기업인]] [[분류:1948년 출생]] [[분류:인하대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