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한 황후)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350><tablebordercolor=#a11><tablebgcolor=#fff,#191919><tablecolor=#000,#fff><bgcolor=#a11> '''{{{#ece5b6 후한의 황후[br]{{{+1 懿獻皇后 | 의헌황후}}}}}}''' || ||<colbgcolor=#a11> '''[[시호|{{{#ece5b6 시호}}}]]''' ||<(> 의헌황후(懿獻皇后) || || '''[[성씨|{{{#ece5b6 성씨}}}]]''' ||<(> 양(梁) || || '''[[휘|{{{#ece5b6 휘}}}]]''' ||<(> 여영(女瑩) || || '''{{{#ece5b6 출생}}}''' ||<(> 불명 || || '''{{{#ece5b6 사망}}}''' ||<(> 159년 || ||<|2> '''{{{#ece5b6 재위}}}''' ||<bgcolor=#a11><:> '''{{{#fff 후한의 황후}}}''' || ||<:> 147년 ~ 159년 || || '''{{{#ece5b6 부군}}}''' ||<(> [[환제(후한)|환제]](桓帝) || || '''{{{#ece5b6 가족}}}''' ||<(> 부친 [[양상(한나라)|양상]](梁商), 오빠 [[양기]](梁冀)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후한]] [[환제(후한)]]의 첫 번째 황후이자 사후에 폐위된 황후로, 이름은 여영(女瑩)이다. [[순열황후 양씨]]의 외척으로 권세를 남용하여 발호장군이라 지칭된 대장군 [[양기]]의 여동생이다. == 생애 == 환제가 당초 여오후(蠡吾侯)의 신분으로서 태후였던 순열황후의 부름을 받아 낙양으로 왔을 때, 제위를 계승시키기에 앞서 황후와 혼인시키고자 하였으나 때마침 [[질제(후한)|질제]]가 사망하여 가례를 치르지 않고 먼저 황제로 즉위시켰다. 다음 해에, 담당 관서를 움직여 황후 책봉의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니, 건화(建和) 원년 6월에 액정(掖庭)에 들어가 그 해 8월에 황후로 세워졌다. 당시는 순열황후가 황태후로서 섭정하고 있었고 오라비인 대장군 양기의 권세가 확고하였으므로 후궁에서 감히 총애를 다투지 못하였고 황제 또한 황후 이외의 후궁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. 이후 순열황후가 사망하자 점차 황후에 대한 총애가 줄었고, 황후에게는 소생의 자녀도 없었다. 또한 투기하는 마음이 있어서 궁인이 임신하면 모두 위해를 가하였다. 하지만 환제가 양기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. 이후 연희(延熹) 2년에 황후는 근심과 울화로 병이 나서 사망하였는데 13년을 재위하였고, 시호를 의헌이라 하고, 의릉(懿陵)에 장사지내졌다. 이 해에, 모반을 도모한 양기를 위시한 일족을 주멸하고, 황후 또한 사후 폐위되어 귀인의 예로 격하되었다. == 둘러보기 == [include(틀:후한서)] [[분류:후한의 황후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