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부여 국왕)] ||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350> '''[[왕호]]''' ||의라왕(依羅王) || ||<width=30%> '''[[성씨|성]]''' ||해(解) || ||<width=30%> '''[[휘]]''' ||의라(依羅) || || '''생몰 연도''' ||불명 || || '''재위 기간''' ||286년 ~ 316년(?)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부여]]의 국왕. == 행적 == [[의려왕]]의 아들로 285년 부여가 [[모용선비]]에게 큰 타격을 입자 [[서진]]에게 구원을 요청한다. 당시 동이교위인 하감이 독우 가침(賈沈)[* 가심(賈沈)이라고도 한다.]을 파견해 의라를 돕자, [[모용외]] 역시 손정을 보내 대응했다. 하지만 가침은 손정을 죽였고 선비족 군사들이 물러나서 부여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. 하지만 이후에도 [[모용외]]는 부여를 공격했으며, 부여인들을 잡아 그들을 [[서진]]에 [[노예]]로 팔아먹었다. 설상가상으로 316년경 [[고구려]]가 요동 일대로 진출을 꾀하자 [[백제]]는 요서로 진출하였고, 이에 부여는 수도를 녹산에서 모용선비와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. [[사마염]]은 이를 가엽게 여겨 사주(司州), 기주(冀州) 2주에서 부여인의 매매를 금지시켰으며 부여인 노예들을 부여로 되돌려보내 주었다. 사실상 마지막 부여 왕으로 기록된 [[현왕(부여)|현왕]]과의 관계는 확실치 않다. == 기타 == [[환빠]]들이 [[환단고기]]를 근거로 의려왕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[[스진 덴노|숭신천황]]이 되었다는 괴설(...)을 주장하지만 애초 환단고기가 위서로 판단된 점과 의라왕은 서진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부여에 남아있던 점이 확실해서 환빠들 외에는 주장하지 않는 편이다. 신찬성씨록에 백제계 성씨 중 依羅連이 있는데 의라왕과의 관계가 있는지는 불명이다. 일단 현대 일본에서는 저걸 음역이 아니라 훈역해서 "요사미"라고 읽어서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. 참고로 依羅連은 [[모노노베|物部]]依羅連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. [각주] [[분류:생년 미상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 부여의 왕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