應璩 (190 ~ 252) [[삼국시대(중국)|삼국시대]] 위나라의 관리이자 문학가. 자는 휴련(休璉). [[응창]]의 동생, [[응정]]의 아버지. 여남 사람으로 넓게 배우고 글을 잘 쓰면서 서기에 능했으며, [[조비#s-1|조비]], [[조예#s-1|조예]] 때 산기상시를 역임했다. [[유정(삼국지)#s-1|유정]]에게 지방으로 나아가서 하는 정치에 대해 충고하는 편지를 보냈다. [[조방#s-1|조방]]이 즉위하자 점차 시중, 대장군 장사로 옮겼으며, [[조상#s-2|조상]]이 정권을 잡고 사치, 낭비에 빠지면서 파당을 조직해 측근들을 중용하고 500여 명의 빈객을 거리는 등 법도를 어기자 시로써 이를 풍자하면서 간했다. 그 말은 비록 생각보다 매우 화합했지만 시요에 많이 적중해 세상에서 칭해졌으며, 다시 시중이 되어 저작을 권장했다. 252년에 죽자 위위에 추증되었다. 저서로는 여유공재서가 있고 그 당시 유명했던 광릉산이라는 작품에 대해 광릉의 청산함을 듣는다고 평가했으며, 오늘날에는 밭을 가는 세 노인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시 한 수가 남아있다. == 창작물에서 ==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오관중랑장부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관직이 없는 상태로 참석했고 사람들에게 주건평을 소개하면서 그의 관상을 보는 능력에 대해 칭찬했다. [[분류:위나라의 인물]] [[분류:190년 출생]] [[분류:252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