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김홍집 내각)] [목차] == 개요 == {{{+1 [[乙]][[未]][[改]][[革]]}}} 1895년 10월 8일(양력)[* 음력은 1895년 8월 20일.] [[을미사변]]으로 다시 들어선 [[김홍집]] [[내각]]이 [[아관파천]]으로 무너지기 직전인 1896년 2월 11일(양력)[* 음력은 1895년 12월 28일.]까지 추진한 일련의 개혁. [[갑오개혁]]의 연장선상에 있다.[* 그래서 제3차 갑오개혁이라고도 하지만 갑오년에 일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을미개혁이라고 더 많이 한다.] == 배경 == [[삼국 간섭]] 이후 일본이 약간 주춤하게 되고 개화파와 친러파(김홍집, [[이완용]])의 연합 내각이 등장하고, [[명성황후|왕후 민씨]]의 세력이 친러파와 결탁을 하여 일본 세력 제거를 시도하기도 한다. 이에 일본은 왕후 민씨를 시해하고(=[[을미사변]]) 친일 성향이 강했던 [[조희연(1875)|조희연]]과 [[유길준]]이 참여하여 4차 김홍집 내각을 조직하고 을미개혁을 추진한다. == 내용 == * [[양력]]의 채용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za_13209009_001|#]] - 음력 1895년 11월 17일이 양력 1896년 1월 1일이 되었다. * [[종두법]]의 시행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za_13210007_001|#]] * 중앙군으로 [[대한제국군 친위대|친위대]], 지방군으로 [[대한제국군 진위대|진위대]] 설치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za_13209013_001|#]] * '''[[단발령]]의 시행'''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za_13211015_003|#]] * [[소학교]]의 설치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za_13209028_001|#]] * [[건양]] 연호 사용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za_13211015_004|#]] * 우체사에서 우편 제도 실시 == 한계 == [[갑오개혁]]도 그렇지만 일본의 침략 행위인 [[을미사변]]으로 들어선 정권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가며 시행한데다가 갑자기 시행한 [[단발령]] 때문에 안 그래도 안 좋았던 평판이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. 결국 김홍집 내각이 [[아관파천]]으로 무너지면서 개혁은 모두 중단되고 만다. 또한 [[단발령]]을 강요했기 때문에 [[을미의병]]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[[최익현]]의 "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칼을 자를 순 없다"라는 명언이 탄생한다. [[분류:조선(19세기)]] [[분류:개화파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