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조선왕릉)] 隆健陵 ||<tablealign=center> [[파일:img_0113_map.jpg|width=100%]] || || 융건릉의 안내도 || [목차] == 개요 == [[융릉]]과 [[건릉]]을 합쳐 부르는 말로, [[경기도]] [[화성시]] 효행로481번길 21에 위치한 [[조선]] [[왕릉(무덤)|왕릉]]이다. 조선의 제22대 임금 [[정조(조선)|정조]]의 효성을 엿볼 수 있는 왕릉으로 1970년 5월 26일에 [[대한민국의 사적|사적]] 제206호로 지정되었다. 2015년 10월 7일 기준 24세 이하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. 2020년 7월 9일 기준 나이대별로 0~1000원까지 입장이 가능하다. [[http://royaltombs.cha.go.kr/html/HtmlPage.do?pg=/new/html/portal_01_13_01.jsp&mn=RT_01_13|홈페이지]] 융건릉의 대략적인 조성 역사는 아래와 같은데, 1789년부터 1900년까지 조성이 이루어졌다. 자세한 내용은 [[융릉]], [[건릉]] 문서 참고. * 1789년(정조 13년) 10월 16일, 사도세자가 묻힌 영우원(永祐園)을 현재 화성의 위치로 옮겨서 현륭원(顯隆園)이라 부르게 하였다.[br] 1816년(순조 16년) 3월 3일,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[[정조(조선)|정조]]의 생모인 [[헌경왕후|혜경궁 홍씨]]가 1815년 12월 15일에 승하한 후, 현륭원에 합장되었다. * 1800년(순조 즉위년) 6월 27일에 [[정조(조선)|정조]]가 승하하자, 같은 년도 11월 6일 현륭원의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하였다. * 1821년 3월 9일 [[효의왕후]]가 승하하자 건릉 부근(즉, 최초의 건릉의 장소인 융릉 동쪽)에 안장하려고 하였으나 영돈령부사 [[김조순]]이 건릉이 풍수지리에 좋지 않다고 하자 건릉을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바꿔서 1821년 9월 13일에 효의왕후를 합장하여 매장하게 되었고, 능호를 건릉으로 합하였다. * 1899년(광무 3년) 9월 1일,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어서 장종(莊宗)이란 묘호를 올리고 현륭원도 왕의 예에 따라 융릉(隆陵)으로 격상되었다. * 1899년([[광무]] 3년) 정조와 효의왕후를 각각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로 높임. * 1899년(광무 3년) 12월 7일, 사도세자의 묘호가 다시 장조(莊祖)로 바뀌면서, 융릉은 황제의 릉이 되었다. * 1900년(광무 4년) 황제의 격에 맞춰서 비각의 표석을 세움. 능역이 들어서기 전에는 [[수원시]], [[화성시]]와 [[오산시]]의 전신인 수원도호부의 읍치(邑治, 관아 소재지)가 있었다. 즉, 수원 시가지를 밀어버리고 지은 것. 그래서 성과 시가지를 이전해 새로 조성한 것이 바로 [[수원화성]]이다. == [[융릉]](隆陵) == [[조선]]의 추존왕이자, 22대 왕 [[정조(조선)|정조]]의 생부인 [[사도세자|장조의황제[* 대한제국때 추존 황제 되었다.]]]와 그의 부인 [[혜경궁 홍씨|헌경의황후[* 대한제국때 추존 황후 되었다.]]]의 합장릉이다. 자세한 내용은 [[융릉]] 문서로. == [[건릉]](健陵) == 조선 제22대 왕 [[정조(조선)|정조선황제]][* 대한제국때 추촌 황제되었다.]와 그 부인 [[효의왕후|효의선황후]][* 대한제국때 추촌 황후되었다.]의 합장릉이다. 자세한 내용은 [[건릉]] 문서로. == 교통편 == * 지하철역에서 꽤 먼 곳에서 위치한다. [[지하철 1호선]] [[병점역]]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 가장 빠른 편이다. * 광역버스 중에 [[경기광주 버스 1551|1551번 버스]]가 융건릉 앞에 정차한다. == 같이보기 == * [[용주사]] [[분류:조선왕릉]][[분류:대한민국의 사적]][[분류:경기도의 무덤]][[분류:화성시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