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수도방위사령관)] ---- [include(틀:국군기무사령관, 명칭=육군방첩부대장)] ---- [include(틀:역대 한국도로공사 사장)] [[파일:external/sstatic.naver.net/201007281419245611.jpg|width=150]] 尹必鏞 1927년 3월 10일~2010년 7월 24일 [목차]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의 정치 [[군인]]. [[종교]]는 [[불교]]. [[본관]]은 [[파평 윤씨|파평]](坡平). [[박정희]]의 진정한 오른팔이었으며 박정희의 [[친위대]]인 [[하나회]]를 관리하였고 박정희가 군 인사 문제를 언제나 상의한 사람이 바로 윤필용이다. [[이후락]], [[김종필]], [[김형욱]], [[박종규]]도 엄청나지만 윤필용만큼은 안 된다.[* 물론 나머지 4명은 [[5.16 군사정변]] 이후 정계 진출 등으로 인해 전역을 해서 1960년대 중반부터 현역 군인이 아니였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. 당연히 군 인사 문제는 윤필용의 손을 거칠 수 밖에 없는 구조. 윤필용 사건도 이후락 [[후계자]] 운운했다가 터진거지 본인 신상의 이야기가 아니였다. [[육군참모총장]]이 아닌 일개 수도방위사령관이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거야말로 [[군부]]의 실세라 할 수 있다. 나중에 하나회 등 [[불법]] 사조직 발생을 막기 위해 장성급 인사 추천권은 민간인 출신인 [[안보]]수석이나 [[국가안보실장]]에게 위임하였다. 사실 이런 이상한 군 인사 처리는 근본적으로 5.16 [[쿠데타]] 자체가 육군사관학교 8기생 주축으로 이루어졌고 1961년 당시에 8기생들 대부분이 [[중령]]이었기 때문이다. 이 와중에 박정희도 육군사관학교 2기 출신이라 육군참모총장들이 대한민국 [[대통령]]하고 동기나 기수 차이가 별로 안나는 [[군대]] 선후배들이었다. 더욱이 10기까지는 군 경력자가 많이 필요했던 건군기의 특성 상 수료 기간이 4년이 아닌 몇 개월에 불과해 기수 간 차가 더욱 적었다. 특히 박정희 말년의 육군참모총장인 [[이세호]] 대장 같은 경우는 아예 대통령 [[친구]]라서 인사안이 거의 승인되었다. 그러니 군 인사 문제는 박정희 본인이 [[통수권]]을 활용해서 직접 처리해서 장악해야 했고 년언은 8기생 현역 군인들 중에서 받아야 했다.] == 생애 == 1927년 3월 10일 [[경상북도]] [[청도군]] 운문면 공암리[* [[파평 윤씨]] 집성촌.][[http://www.kookje.co.kr/news2011/asp/newsbody.asp?code=2200&key=20110415.22028191804|#]]에서 출생해 [[경북고등학교|대구고등보통학교]] 졸업 후 1949년 육군사관학교를 8기로 졸업하였고 [[제5보병사단|5사단장]] 박정희 [[준장]] 아래에서 군수 [[참모]]를 지냈다. 1961년 [[국가재건최고회의]] 의장실 [[비서실장]] 대리를 지냈으며 1965년 [[육군]] [[국군기무사령부|방첩대]]장(현재의 국군기무사령관)에 보임되자마자 [[원충연 반혁명 사건]]을 파악하고 사전에 모조리 제압하여 박정희의 신임을 샀다. 1968년 [[1.21사태]] 때 방첩대에서 [[김신조]]를 수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신조의 "내레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디요"라는 발언을 여과없이 [[방송]]에 내보냈다가 경질되었다.[* 후임 방첩부대장이 바로 [[제6군관구사령관]]이었던 [[김재규]] [[소장(계급)|소장]]이다.] 그 후 [[제20기계화보병사단|20사단장]], [[베트남]] 파병 [[수도기계화보병사단|맹호부대장]]을 지내고 1970년 [[수도방위사령부|수도경비사령관]]으로 보임되었다. 이러한 가운데 [[손영길]], [[전두환]], [[노태우]], [[정호용]], [[김복동(1933)|김복동]] 등이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인 하나회의 후원자 역할을 하며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. 1971년 8월 육군보안사령관 김재규 [[중장]]의 지시로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 요원들이 자신의 [[전화]]를 도청한 사실을 적발하고 보안반 요원들을 내쫓았다. 이때 모 [[대장(계급)|4성 장군]]이 그의 집에 [[세배]]를 할 정도의 위세를 누렸으나 1973년 4월 술자리에서 이후락 [[중앙정보부장]]에게 "[[사망 플래그|각하께서 연로하시니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. 형님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.]]"라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되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체포되었고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육군보안사령관 [[강창성]] 소장에 의해 조사를 받았다. 그 다음으로 [[계룡대|육군본부]] 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되었는데 [[재판]]에서 쿠데타 모의 혐의는 입증되지 못했지만 업무상 [[횡령]],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, [[군무이탈]] 등 8개 죄목이 적용되어 [[징역]] 15년형과 벌금·추징금 약 2,600만원을 선고받았다. 수도경비사령부 [[참모장]] 손영길 준장을 포함한 [[장군]] 3명과 [[장교]] 10명에게도 징역형이 내려졌으며 이로 인해 그와 가까운 장교 30여 명이 무더기로 [[군복]]을 벗었다. 한국 현대사의 권력 [[스캔들]]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사건은 [[윤필용 사건]]이라고 불리는데 [[박종규]]가 이후락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라고도 한다. 이후 윤필용은 수감된지 2년 뒤인 1975년 [[석방]]되었다. 1980년 하나회가 주축이 된 [[신군부]]가 집권하자 전두환의 도움으로 [[한국도로공사]] 사장, [[한국담배인삼공사]] 이사장 등을 지냈다. 2010년 7월 24일 [[사망]]한 직후에 아들인 [[미주제강]] 회장 윤해관이 재심 청구를 하여서 보안사의 고문으로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취지로 [[무죄]] 판결을 받았다. == 대중매체에서 == * [[SBS]] 드라마 [[코리아게이트(드라마)|코리아게이트]]에서는 배우 겸 성우 [[박웅]]이 윤필용을 연기하였다. * [[MBC]] 드라마 [[제4공화국(드라마)|제4공화국]], [[제5공화국(드라마)|제5공화국]]에서는 배우 [[민지환]]이 연기하였다. == 기타 == * [[독재]] 정권 치하에서 [[2인자]]가 어떻게 몰락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[[교과서]]적인 인물이다. 특히 [[각하]]께서 물러나시고 형님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발언은 술자리에서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대한민국이 독재 [[국가]]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 발언의 의도가 어쨌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조사받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. 더군다나 윤필용은 당시 세간으로부터 '필동 [[육군본부]]', '[[청와대]] 밖의 대통령'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[[숙청]] 안당하는게 이상하다. 무엇보다 박정희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믿던 [[도끼]]에 발등이 찍힌 꼴이 되니 대노한 것은 물론이고[* 박정희의 부인인 [[육영수]]도 "아니 윤 장군이 어째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냐"면서 윤필용을 힐난할 정도였으니 당시 청와대의 분노는 얼만큼인지 알 만하다. 윤필용의 경우에는 박정희가 군인인 시절부터 발탁되어 수십 년간 박정희를 보좌한 최측근 중의 최측근이다. 김종필, 박종규 등이 아무리 권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박정희의 최측근은 어디까지나 윤필용이다. 이는 박정희가 군 인사 문제를 다른 사람과 아닌 윤필용과 상의해서 결정한 것만 봐도 당시 박정희가 윤필용을 얼마나 신임했는지 잘 보여준다. 물론 당시 박정희의 최측근 중에서 현역 군인은 윤필용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.] 결국 윤필용은 군인으로서의 [[생명]]은 물론이요, [[대한민국 제3공화국|제3공화국]]과 [[대한민국 제4공화국|제4공화국]]의 권력자 및 정치인[* 엄밀히 말하면 만기 전역 후에 보장된 [[정치]] 활동이 날아갔다고 봐야 한다.]으로서의 생명까지 끝장이 나버리게 되었다. 이후락도 윤필용 사건 이후로 윤필용과 공모하여 박정희에 대한 [[반역]]을 꾀한 [[역적]]이라는 [[낙인]]이 찍혀버리기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이후락은 언제 중앙정보부장에서 쫒겨날지 모르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. 이는 훗날 박정희에 대한 [[충성]]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[[김대중 납치 사건]]을 계획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. 결국 자중해도 모자란 판에 이후락과 가까워진 다음에는 '[[박정희|영감]]이 [[5.16 군사정변|혁명]]할 때 나이가 몇이었지' 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. 박정희하고 친인척인 김종필이 [[정적]]들의 '0순위 타겟'[* 조카사위+5.16 군사정변 주체의 조합이니 당연히 가장 먼저 타겟으로 지목되는 구조다.]으로 박정희 정권 내내 견제당하면서도 살아남은 것과 비교된다. [[분류:한국도로공사 사장]][[분류:대한민국의 군인]][[분류:청도군 출신 인물]][[분류:파평 윤씨]][[분류:1927년 출생]][[분류:2010년 사망]][[분류:대한민국의 불교 신자]] [[분류:육군사관학교 출신]] [[분류:경북고등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