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목차] == [[대한민국]]의 의사 == [[파일:윤치형.png]] 尹治衡 1896~1970 [[일제강점기]] 및 [[대한민국]]의 [[의사]], 조선인 최초의 의학박사. === 생애 === [[함경남도]] [[장진군]]에서 태어났다. 독립소학교와 명명중학(明明中學)을 거쳐, 1918년 [[경성의학전문학교]]를 우등 성적으로 졸업했다. [[조선총독부]] 관비유학생에 선발, [[규슈대학|규슈제국대학]] 제2외과에 입학하여 연구하면서 '간의 부분적 절제법'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. 1920년 [[함경북도]] [[성진]] 가나다선교사가 경영하는 여수교병원 외과부장으로 취임하여 임상 연구를 하였다. 1921년 4월 [[경성부|경성]]으로 돌아와 [[인사동(서울)|인사동]]에 외과의원을 개업해 일반인을 진료하면서 창상의 원발성 봉합법을 발명하였다. 1922년 [[독일]] [[브레슬라우]] 대학(현재는 [[폴란드]]의 [[브로츠와프]] 대학)에서 추트낼 교수의 해부학교실에서 [[유방암|유선암종]] 근치 수술법을, 내과학교실과 병리학교실에서 폐결핵 수술법을 연구했다. 1924년 1월 일본 [[규슈]]로 돌아와 외과에 근무하면서 '혈청단백의 정성 및 정량법', '위와 장의 원발성 육종'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. 1924년 6월 '건강폐와 결핵폐에 미치는 [[기흉]]의 작용'이라는 논문으로 [[규슈대학|규슈제국대학]]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아,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의학박사가 되었고[* 박사학위를 최초로 받은 조선인은 [[이승만]]이다. 1910년에 [[프린스턴 대학교]]에서 Ph.D. 학위를 받았다.], 모교인 [[경성의전]] 교수에 취임했다. 1926년 경성의전 교수직을 사임하고 관훈동에 개인병원을 개설, 연구를 계속하여 결핵약 '데이진', [[광견병]] 특효약 '넬츠운진' 등을 발명하였다. 1970년 10월 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. 향년 76세.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70100300209207024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70-10-03&officeId=00020&pageNo=7&printNo=15073&publishType=00020|#]] [[분류:의사]] [[분류:규슈대학 출신]][[분류:1896년 출생]][[분류:1970년 사망]][[분류:장진군 출신 인물]][[분류: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]] == [[대한민국]]의 정치인 ==