* [[정치인/목록]] [[파일:external/rokps.or.kr/509.jpg|width=150]] 尹鎔球 1914년 9월 27일 ~ 1984년 6월 7일 [[대한민국]]의 전 [[정치인]]이다. 자는 성극(聲極), 호는 석초(石樵), 본관은 [[파평 윤씨|파평]](坡平).[[http://cheongsong.grandculture.net/Contents?local=cheongsong&dataType=99&contents_id=GC06800879|#]] 1914년 [[경상북도]] [[청송군]] 청송읍[[http://www.kyongbuk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004037&sc_serial_code=SRN124|#]]에서 태어났다. 청송공립보통학교, [[일본]] [[오사카]] 초지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. 이후 귀국하여 1930년대 [[동아일보]] 청송지국장을 지냈다. [[8.15 광복]] 이후 [[우익]] 정치인이 되어 [[신탁통치]]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청송군 지부장, [[대한청년단]] 청송군 [[단장]] 등으로 활동하였다. 1948년 [[제헌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대동청년단]] 후보로 경상북도 청송군 [[선거구]]에 출마하였으나 교육협회 [[김봉조(1905)|김봉조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50년 [[제2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대한청년단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[[지역구]] [[대한민국 국회의원|국회의원]]인 [[무소속]] 김봉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54년 [[제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자유당]]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봉조 후보에 설욕하였다. 1958년 [[제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60년 [[제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 심길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61년 [[3.15 부정선거]]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. 1963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국민의당(1963년)|국민의당]] 후보로 경상북도 청송군-[[영덕군]]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[[민주공화당]] [[김중한]]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. 1967년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는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 [[공천]]에서 [[김영수]]에 밀려 탈락하였다. [[분류:제3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4대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당 국회의원]][[분류:청송군 출신 인물]][[분류:1914년 출생]][[분류:1984년 사망]][[분류:파평 윤씨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