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yunposun.com/tech72/data/board/photo/file_in_body/1/1121406609.jpg|width=150]] 尹英烈 [[1854년]] [[4월 15일]] ~ [[1939년]] [[11월 4일]](85세) 윤영렬은 [[조선]], [[대한제국]]의 정치인이다. [[윤웅렬]]의 동생이자 [[윤치호]]의 숙부, [[윤치영]] 前 서울 시장의 아버지, [[윤보선]] 前 대통령의 조부이다. 조카 [[윤치호]]의 [[윤치호 일기|일기]]에 따르면 학식이 모잘라서 글을 못 읽지만 수완력과 판단력은 좋았다고 평가된다. [[1938년]] 조카 윤치창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치창에게 집이 돈에 비해 너무 큰 것 같지 않냐고 말한 것이 그 증거. '''[[1867년]]'''[* 윤영렬이 현대 사람이라면 '''중1''' 때 결혼한 것이다. 12세에 결혼한 [[박영효|더 심한 사례]]가 있긴 하지만 이쪽은 자식을 두지 못했다. ] 한진숙[* 이쪽도 [[1851년]]생이라 '''고1''' 때 결혼한 것이다. ]과 결혼해서 6남 2녀[* 첩이 낳은 자식까지 합치면 9남 5녀. ]를 두었다.[* 하지만 이것도 밝힌 것들 뿐이지 더 많을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대다수 남아 있다. 그의 회고록에서 자식이 너무 많아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.] 장남 윤치오가 [[1869년]]생이니까 현대식으로 '''중3''' 때 애 아빠가 됐다는 것. 거기다 막내 아들 [[윤치영]]은 [[1898년]]생이라 [[1851년]]생인 한진숙이 낳았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.[* 당시 마흔이 넘는 나이에 여성이 임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. [[인조]]의 비 [[인열왕후]]도 41살에 아이를 가졌지만 산후열로 사망한 사례가 있었으니. ] 어쨌든 장수해서 [[1927년]] 회혼례도 올렸다. [[여담]]으로 여성편력이 대단히 심했다고 한다. 오죽했으면 별명이 [[색마]]였다고 할 정도니(...) 이 때문인지 여러 부인을 거쳤으며 자녀가 무지하게 많다. 총 20명이 넘는다고(...)...--[[정력|정력왕]]--[* [[의친왕]], 육종관([[육영수]]의 아버지)와 더불어 자녀를 가장 많이 둔 인물로 손꼽힌다.] [[분류:대한제국의 인물]][[분류:해평 윤씨]][[분류:1854년 출생]][[분류:1939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