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external/tv03.search.naver.net/yonhapnews_28333289.jpg|width=150]] [[1919년]] [[12월 3일]] - [[2001년]] [[6월 25일]] 陸寅修 [[대한민국]]의 전 [[정치인]]이다. [[육영수]]와 [[육예수]]의 친오빠, 육인순의 남동생, [[박정희]]의 손위처남이며, [[박근혜]], [[박근령]], [[박지만]], [[홍세표]], [[홍소자]]의 [[외삼촌]]이다. [[종교]]는 원래는 [[불교]]였으나, 언젠가부터 [[개신교]]([[장로회]])로 [[개종]]하였다. 1919년, [[충청북도]] [[옥천군]]에서 태어났다.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(現 [[청주고등학교]]), 일본 도쿄 무사시노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. 이후 [[교사]]로 근무하였다. 1963년 매제 [[박정희]]가 집권한 직후 [[제6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[[민주공화당]] 후보로 충청북도 옥천군-[[보은군]]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67년 [[제7대 국회의원 선거]], 1971년 [[제8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1971년 [[10.2 항명 파동]]으로 [[중앙정보부]]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였고, 이로 인해 [[육영수]]가 [[중앙정보부]]에 항의 전화를 하였다. 1973년 [[제9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-옥천군-[[영동군]] 선거구에 출마하여 [[무소속]] [[이용희(1931)|이용희]]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. 그리고 같은 해부터 1976년까지 [[대한민국 국회]] 문교공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. 1978년 [[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]]에 연루되어 모든 공직을 사퇴한다고 선언하였다. 그러나 같은 해 치러진 [[제10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[[신민당(1967년)|신민당]] 이용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. 1979년 [[10.26 사건]] 이후 [[김종필]] [[총재]] 체제가 출범하자 중앙위원회 [[의장]]이 되었다. 1980년, [[전두환]]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. 1984년,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. 가족관계로는 부인 박심자 여사[* 2004년 타계.]와 슬하 3남 3녀가 있다. [[분류:제6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7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8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9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0대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공화당(1963년) 국회의원]][[분류:옥천군 출신 인물]][[분류:옥천 육씨]][[분류:2001년 사망]][[분류:1919년 출생]][[분류:대한민국의 장로회 신자]][[분류:청주고등학교 출신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