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남인)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 width=400><table bordercolor=#94153E><#94153E> {{{#fff {{{+1 '''유혁연''' [br] 柳赫然}}}}}} || ||<#94153E> {{{#fff '''본관'''}}} ||<(> [[진주 류씨]] || ||<width=20%><#94153E> {{{#fff '''출생'''}}} ||<(> [[1616년]] || ||<#94153E> {{{#fff '''사망'''}}} ||<(> [[1680년]] [[5월 20일]] (향년 64세) || ||<#94153E> {{{#fff '''자'''}}} ||<(> 회이(晦爾) || ||<#94153E> {{{#fff '''호'''}}} ||<(> 야당(野堂) || ||<#94153E> {{{#fff '''시호'''}}} ||<(> 무민(武愍) || ||<#94153E> {{{#fff '''가족관계'''}}} ||<(> 아버지 유효걸(柳孝傑) || ||<#94153E> {{{#fff '''붕당'''}}} ||<(> [[남인]], [[탁남]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남인]] 집권기 당시 병권의 상징이었다. == 생애 == 무신 집안 출생으로, 1644년 무과에 급제해 덕산현감과 선천부사를 맡았다. 1653년 6월 황해도병마절도사로 승진했고, 이듬해엔 수원부사를 역임했다. [[효종(조선)|효종]]이 [[서인]], 특히 [[산당]]을 제어하려고+북벌론[* 다만 효종의 북벌론은 방어에 집중하고 있다.]을 실행하려 이완(李浣)과 함께 승지로 파격승진된 뒤 북벌론을 지원했다. 이후 충청병사, 삼도수군통제사, 공조참판, 어영대장, 형조참판, 한성좌윤 등을 지냈다. === 당쟁과 유혁연 === [[남인]] 계열이라 [[송시열]]에게 미움을 샀고, 송시열의 제자이기도 한 [[김수항]]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피혐한 뒤 한직 동지중추부사와 지중추부사를 지내기도 했다. 다만, 이때 어영대장직에선 물러나지 않았다. 1669년엔 어영대장의 직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하여 도제조 잠시 보직을 옮겼다 우포도대장으로 복귀했다. 여기서 그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. [[훈련도감]] 소속 5,000명 군사들에게 쓰이는 운영비가 많이 들자, 그는 훈련별대를 분리시켰다. 급료병의 수는 줄어서 운영비는 덜 들고 군액은 그대로였다. 훈련별대는 금위영(禁衛營)으로 합쳐진다. 이로 인해 공조판서로 다시 중앙 정계에 발을 들였으나 또 문신들이 반발하여 잠시 중추부로 갔다가, 형조판서를 거쳐 다시 공조판서가 되었다. 이후 다시 훈련대장, [[한성판윤]], 포도대장 등 요직을 지낸 뒤 역임하고 본업인 훈련도감에 훈련대장으로 돌아왔다. 이때 [[윤휴]]의 북벌론에 '윤휴는 일을 맡아보지 못해서 쉽게 말을 하옵니다'라고 여타 당시 대신들과 같이 반대 입장을 보였다. === [[경신환국]] === [[허적]]의 연회 때, 숙종은 비가 오는 것을 보곤 유악과 차일을 가져가 주라고 했으나, 이미 가져간 것을 알고 유혁연, [[김만기]]와 신여철을 패초(부름)한다. 여기서 유혁연의 훈련대장직은 [[김만기]]에게 넘어가며 유혁연은 관직에서 물러난 상태가 되고, 남인은 병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. 이때, [[허적]]의 아들인 [[허견]]의 옥사가 시작된다. 허견과 [[인평대군]]의 삼남인 복선군은 [[김석주]]를 제거하기 위해 체찰부를 설치하고, 심지어는 숙종에게 후사가 없으니 복선군에게 왕위가 넘어갈 수 있다는 위험한 발언을 했다. 그후 고변자 정원로가 말하기를, 2,000명 정도의 군사들을 사적으로 훈련시켜 김석주를 제거하려 했다고 주장했고, 유혁연에게 책임이 갔다. 유혁연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반박했고, 잠시 유배된다. 위리안치까지 갔고, 끝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결국 사사된다. [[정조(조선)|정조]] 때 신원된다. == 가족관계 == * 증조부 : 유용(柳溶)[* 경원부사] * 조부: 유형(柳珩)[* 삼도수군통제사] * 부 : 유효걸(柳孝傑) * 동생 : 유병연(柳炳然) * 부인 * 손자 : 유득장(柳得章) * 외손부[* 외손자의 아내] : [[복녕군|복녕군]]의 딸 * 숙부 : 유지걸(柳智傑) 부인이 누구였는지, 아들은 누구고 몇 명이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 1남 1녀는 둔 듯하다. [[조선왕조실록]]에 따르면, [[해남]]현감 유득장이 유혁연의 손자인데, 더한 짓을 저질렀다며 국문하라는 기사와, 복녕군의 딸이 유혁연의 외손자와 혼례를 치뤘다는 기사가 나온다. [[분류:진주 류씨]][[분류:1616년 출생]][[분류:1680년 사망]][[분류:조선/인물]][[분류:남인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