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-5>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tablebordercolor=#580009><bgcolor=#580009><tablebgcolor=#f5f5f5,#1f2023> [[대한민국 국회|[[파일:국회휘장(9대-19대).png|width=30]]]] {{{#cfa547 '''[[대한민국 국회의원|{{{#cfa547 대한민국 국회의원}}}]] ([[대구광역시|{{{#cfa547 대구광역시}}}]] [[중구(대구)|{{{#cfa547 중구}}}]])'''}}} || ||<width=30%> ''신설'' [br] '''[[유성환]][br][[이만섭]]'''[* 대구광역시 서구·중구 선거구의 제12대 국회의원이다.] ||<width=5%> → ||<width=30%> 제13~14대 [br] ''' 유수호 ''' ||<width=5%> → ||<width=30%> 제15대 [br] [[박준규(1925)|박준규]] || [include(틀:유승민)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 [[파일:external/www.idaegu.co.kr/2015110901000342500022011.jpg|width=100%]] || ||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이름''' ||유수호 (劉守鎬) || ||<|2>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출생''' ||[[1931년]] [[12월 16일]] || ||[[경상북도]] [[영주시]] [[이산면]] 용상2리[* [[유(성씨)#s-2.2|강릉 유씨]] 집성촌이다. [[12.12 사태]] 당시 특전사령관을 지냈던 [[정병주]] 소장은 용상1리 배해마을 출신이다. [[http://www.kbmaeil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411195|#]]] || ||<|2>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사망''' ||[[2015년]] [[11월 7일]] (향년 83세) || ||[[대구광역시]] [[중구(대구)|중구]] [[삼덕동(대구 중구)|삼덕동]] [[경북대학교병원]] || ||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본관''' ||[[유(성씨)#s-2.2|강릉 유씨]][* 31세손 口종(鍾) '''口호(鎬)''' 항렬] || ||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학력''' ||[[경북고등학교]] {{{-1 ([[졸업]])}}}[br][[고려대학교]] {{{-1 (법학 / [[학사]])}}} || ||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의원 선수''' ||'''2''' || ||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의원 대수''' ||[[제13대 국회의원|13]], [[제14대 국회의원|14]] || ||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가족''' ||장남 유승정, 장녀 유진희,[br]차남 [[유승민]], 손자 유훈동, 손녀 [[유담]] || ||<bgcolor=#1b5b40,#222222><color=#fff,#e5e5e5> '''종교''' ||[[불교]]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판사 출신 정치인. [[국민의힘]] [[유승민]] 전 국회의원의 아버지. == 생애 == 1931년 [[경상북도]] [[영주시|영주군]] 이산면 용상2리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났다.[* 다만 일가는 [[대구광역시|대구]]로 이사해서 유수호 전 의원의 자택은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었다. 그렇지만 사후 [[영주시]] [[풍기읍]] 백리에 안장되었다.[[https://m.blog.naver.com/kwongunho/220600393668|#]]] [[경북고등학교]]를 졸업하고[* [[노태우]]와 동기동창이다.] 1951년 [[고려대학교]] [[고려대학교/학부/법과대학|법학과]]에 입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였다. 1955년에 제7회 [[사법시험|고등고시 사법과]]에 합격하였으며, 1960년 육군 군법무관 대위로 군 복무를 마친 뒤, 대구지방법원 [[판사]]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하였다. 1973년 판사 재임용에 탈락한 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85년부터 정치인으로 활약하였다. 1996년 정계를 은퇴하였고, 2015년 11월 7일에 84세 생일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. === 판사 및 법조인 시절 === [[파일:유수호 1.jpg|width=400]] 부산지법 부장판사 시절 용두산 공원에서 수학여행을 온 차남 유승민과 찍은 기념사진. 1960년 [[대구지방법원]] 판사, 1966년 [[대구고등법원]] 판사, 1968년 대법원 재판연구관, 1970년 [[부산지방법원]] 부장판사를 역임하였다. 당시 형사배석판사였던 이선우 변호사에 따르면, 재기발랄하고, 촌철살인의 언변을 구사하셨던 분이었다고 한다. 그 입담은 아들에게 잘 이어진 모양. 부산지법 부장판사 시절인 1971년 부산진구 을 지역구의 민주공화당원 [[강성태]], [[최영해]]가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[[최두고]] 후보의 패색이 짙어지자 당원 천여명을 몰고 가 위협하며 개표소에 유리병을 던지는 등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었다. 이 사건에 유수호 재판장은 주범인 공화당원 두 명에게 징역형이라는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. 이는 한창 [[박정희]] 대통령이 전국적 지지를 얻고 있던 시기였고, 아무도 건들지 못할 정도의 세력을 가진 공화당원에게 드물게 실형이 내려진 것이다. [[제7대 대통령 선거]]에서 '4.27 개표조작 사건'[* [[윤동수]] 울산시장과 울산시 공무원들이 개표를 조작하는 등 선거부정을 저질러 민주공화당 [[박정희]] 후보의 울산시 득표율이 76%에서 81.2%로 상승하게 만들었던 사건.]의 주범인 윤동수 울산시장에게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. 이는 [[박정희]]가 부정선거로 당선되었음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,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 이후 어수선하던 당시 정국을 완전히 뒤흔드는 빌미가 되었다. 두 달 뒤에는 [[박정희]] 정권 퇴진을 부르짖으며 반정부 시위를 주동한 당시 [[부산대학교]] 총학생회장 [[김정길(1945)|김정길]]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"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"며 김정길을 석방하였다. 결국 이러한 행동으로 박정희 정권에게 단단히 찍혔으며, [[10월 유신]] 이후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말았다. [[참여정부]]에서 [[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]]을 지낸 [[최영도]] 변호사도 당시 해직판사중 1인이었는데, 그는 유수호 전 판사에 대해 '''올곧은 판사며 소신있는 재판을 했던 사람이다. 또한 사법파동 당시 박정희 정권의 판사 재임용 탈락방침에 부산에 있는 판사들을 소집해 회의하고 미리 사표를 제출하자고 한 사람이 유수호 판사였다''' 고 증언하였다. 또한 [[국민의 정부]] 초기 행정자치부 장관이자, 고 [[노무현]]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 알려진 김정길 전 장관은, '''당시 유신 직전이라 학생운동에 박정희 정권은 상당히 민감했는데, 유수호 부장판사님이 쉽지 않은 판결을 해주셨고 저는 큰 신세를 졌다'''라고 증언하였다. 그 후 대구에서 [[변호사]] 개업을 하였고, 대구고려합동법률사무소에서 일하였다. 이후 46세라는 꽤 이른 나이에 제30대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하였고, 후에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였다. 법조인 시절부터 남모르게 장학사업이나 불우이웃을 많이 도왔다고 한다. '유수호 장학회'를 설립하여 약 120명의 법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고 한다.. 훗날 고 유수호 전 의원의 장례식에서 [[경북대학교]] 사회학과 동창회장이 편지를 통해 부의금을 전달하며, 학창시절 사회학과 학생 하나가 백혈병을 앓을 때 치료비를 흔쾌히 보태주었던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전하였다. 훗날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각종 무료 법률상담 및 무료변론 그리고 국선변호를 이어나갔고, 그 결과 2002년 법의 날에 '국민훈장 무궁화장'을 수여받았다. === 정치인 시절 === 박정희에게 단단히 밉보였음에도 불구하고 [[제10대 국회의원 선거]] 당시 [[민주공화당]]에 경상북도 대구시 [[동구(대구)|동구]]-[[남구(대구)|남구]]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[[이효상]]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였다. [[전두환]] 대통령 시절인 1985년 경북고등학교 동기인 [[노태우]], [[김윤환]], [[정호용]]와의 인연으로 [[민주정의당]]에 입당하였고, 1988년 [[제13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[[통일민주당]] [[김현규]]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. [[파일:ㅇㅅㅎ.png|width=350]] 민주정의당 [[대한민국 국회의원|국회의원]] 시절 소탈하고 대범하면서도 의리 있는 정치인으로 통하였다. 여당 의원이었지만 강단과 소신이 있어서 정부에 여당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.[* [[이만섭]] 전 [[대한민국 국회의장|국회의장]]이 한 말이다. 매일신문 2011년 7월 9일자] 심지어는 국회의원 당선 직후, 1988년 '월간조선' 8월호 좌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. 이때는 [[제6공화국]]의 [[노태우]] 시절이었다. > 지나간 3, 4공화국 때 만든 긴급조치법 따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한마디로 위정자나 한 정부가 자기네들의 구미에만 맞는 법을 제정한 것이지, 국민을 위한 법을 제정한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. 가령 유신시절 긴급조치로 재판받은 피의자에게 7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곤 했지만 국민은 진심으로 그 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. 그 법을 옳은 법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자연법적 정의를 실정법이 제대로 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.”... [[파일:유수호.jpg]] 월간조선 좌담회에 참석한 유수호 의원과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. 1990년 [[3당 합당]] 이후 1992년 [[제14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도 [[민주자유당]] 후보로 대구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. 같은 해 [[제14대 대통령 선거]]를 앞두고 치러진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에 [[이종찬(1936)|이종찬]] 전 의원 진영에 섰다. 그러나 [[전당대회]]에서 [[김영삼]]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1992년 10월 [[박철언]], [[김용환(1932)|김용환]], [[장경우]] 의원 등과 함께 민자당을 탈당하여 [[이종찬(1936)|이종찬]] 의원이 주도하는 [[새한국당]]에 합류했다.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새한국당이 [[정주영]] 전 회장이 대표로 있는 [[통일국민당]]과 통합을 할 때, 새한국당의 통합 협상대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. 통일국민당으로 들어간 후 정주영 전 회장의 당선을 위해 노력하였으며, 1992년 대선 몇일 앞두고 불거진 [[우리가 남이가|초원복집 사건]]때 국민당쪽 고발인으로 활약하였다. [[파일:유수호 2.jpg]] 우측이 당시 유수호 의원. 정주영 전 회장이 대선에 패배한 뒤 통일국민당은 [[신정치개혁당]]과 합당하여 [[신민당(1994년)|신민당]]이 되었는데, 이때 유수호 역시 신민당에 합류하였다. 그러나 1994년말 신민당을 탈당하였고, 1995년 초 [[자유민주연합]]이 창당할 때 합류하였다. 1996년 [[제15대 국회의원 선거]]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"더 이상 정치를 해야 할 명분과 사명을 찾기 어려운 이때쯤 정치를 마감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판단했다. 천직인 재야 법조인으로 돌아간다."는 말을 남기면서 정계를 은퇴하였다. 이후 자유민주연합 상임고문에 임명되었다. == 논란 == === [[5.18 민주화운동]]에 대한 태도 === * [[민주정의당]] 의원 시절 1989년 5.18 청문회에서 [[주남마을 총격사건]] 유일한 생존자인 홍금숙 씨에게 '''"기왕 결혼 하려면 [[경상도]] 남자와 좀 결혼을 해서 이 쓰라린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증인이 그런 역사적인 사명. 그런 씨앗을 한 번 심어줄 용의는 없는가?"'''라는 망언을 한 적이 있다. [[https://programs.sbs.co.kr/culture/sbsspecial/vod/53591/22000379498|SBS 스페셜 2020년 5월 17일 방영분]] [[파일:유수호 청문회.jpg|width=500]] * [[자민련]] 의원 시절이던 1995년에는 [[김영삼]]이 지정한 5.18 특별법이 법률 불소급 원칙을 어긴다고 주장했다. 이 과정에서 "특별법은 헌법위반이라고 한 사람들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이제 와서 헌정질서를 바로잡겠다고 하니 이게 무슨 꼴이냐. 특히 전 대통령들 밑에서 공천 받고 녹 먹은 사람들이 자기 보스를 잡아넣겠다는 것이 도의적으로 맞는 말이냐."[* 동아일보 1995년 12월 12일자 기사], "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가?" 등의 발언을 했다. [[파일:유수호 3.jpg]] == 가족관계 == 부인 강옥성과 함께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. 장남 유승정(1955년생)은 경북고-[[서울대학교]] [[법과대학]]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자신과 똑같이 육군 군법무관 대위로 군 복무를 한 뒤 [[서울남부지방법원]]장까지 역임하였으며, 현재는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. 장녀 유진희는 약사로 알려져 있다. 사위 [[김진기]](1949년생)는 경북고-[[서울대학교]] [[법과대학]]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역시 자신과 똑같이 육군 군법무관 대위로 군 복무를 한 뒤 [[대구고등법원]]장까지 역임하였다. 차남 [[유승민]](1958년생)은 경북고-[[서울대학교]] [[경제학과]]를 졸업하고 육군 병장으로 군 복무를 한 뒤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, [[한국개발연구원]]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다 [[이회창]]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제17대, 18대, 19대, 20대 [[국회의원]]([[한나라당]][* 17~18대], [[새누리당]][* 19~20대 초기], [[바른정당]], [[바른미래당]], [[새로운보수당]], [[미래통합당]][* 20대 이후])을 역임하였다. == 선거 이력 == ||<tablealign=center><rowbgcolor=#1b5b40> {{{#ffffff 연도}}} || {{{#ffffff 선거종류}}} || {{{#ffffff 소속정당}}} || {{{#ffffff 득표수(득표율)}}} || {{{#ffffff 당선여부}}} || {{{#ffffff 비고}}} || || 1988 || [[제13대 국회의원 선거]](대구 중구) || [[민주정의당]] || '''47,594(56.9%)''' || '''당선(1위)''' || || || 1992 || [[제14대 국회의원 선거]](대구 중구) || [[민주자유당]] || '''29,625(46.9%)''' || '''당선(1위)'''[* 민주자유당 탈당 후 1995년 [[자유민주연합]] 창당] || || [[분류:법조인 출신 정치인]][[분류:영주시 출신 인물]][[분류:대한민국의 법조인]][[분류:대한민국의 불교 신자]][[분류:1931년 출생]][[분류:2015년 사망]][[분류:강릉 유씨]][[분류:대한민국의 자유보수주의자]][[분류:유승민]][[분류:고려대학교 출신]][[분류:제13대 국회의원]][[분류:제14대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정의당 국회의원]][[분류:민주자유당 국회의원]][[분류:통일국민당 국회의원]][[분류:신민당(1994년) 국회의원]][[분류:자유민주연합 국회의원]][[분류:경북고등학교 출신]][[분류:국민훈장 무궁화장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