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회령시 출신 인물]][[분류:1896년 출생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건국훈장 애국장]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10><tablebordercolor=#0047a0><tablebgcolor=#ffffff,#1f2023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5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115deg, #cd313a 50%, #0047a0 50%)" '''[[독립운동가|{{{#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}}}]]'''[br] {{{#ffffff '''{{{+1 유봉춘}}}'''[br]'''兪奉春, 兪鳳春'''}}}}}} || ||<|2><width=80><color=#fff><colbgcolor=#0047a0> '''출생''' ||[[1896년]] [[4월 12일]] || ||[[함경북도]] [[회령시|회령군]] 주을면 금생리 || ||<|2><color=#fff> '''사망''' ||몰년 미상 || ||사망지 미상 || ||<color=#fff> '''상훈''' ||건국훈장 애국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독립운동가.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유봉춘은 1896년 4월 12일 함경북도 회령군 주을면 금생리에서 태어났다. 그는 1920년경 대한국민회 제1남지방부 주북지회 모연원(捐募員)을 맡았고, 그해 음력 7월 [[박준학]]ㆍ[[최정수]]ㆍ황운흥(黃雲興) 등과 함께 밀정 윤달수(尹達壽)를 화룡현 사대사 증봉동 부근 산곡으로 연행하여 처단하였다. 같은 해 음력 8월 1일에는 함북 회령군 팔을면 창효동에 사는 김병린(金炳燐)의 집에 김병철(金炳喆) 외 18명을 모이게 한 후 2천 원의 군자금 모집을 약속받았으며, 2일 밤에도 팔을면에서 최태항(崔泰恒)ㆍ강기용(姜璣瑢)ㆍ최병연(崔秉淵)ㆍ윤영준(尹永俊) 등에게서 후일 군자금을 받기로 약속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1년 4월 회령경찰서에 체포되었다. 1922년 4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살인, 불법체포, 감금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8월 18일 가출옥하였다.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.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유봉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