魏平 생몰년도 미상 [목차] == 개요 == [[삼국시대(중국)|삼국시대]] 위나라의 장수. 220년에 [[조조]]가 죽자 [[국연#s-2|국연]]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항복했지만 다시 반란을 일으킬 때 장진, 황화 등이 호응해 세력이 점점 커지자 무위 태수 관구흥이 원군을 요청하면서 조서를 받고 [[학소]]와 함께 금성에 있었다. 231년에 [[제갈량]]이 기산을 공격하면서 [[사마의]]를 상규에서 공격하려고 했는데, 제갈량이 [[곽회]], [[비요]] 등을 격파한 뒤에 사마의가 교전에 응하지 않자 퇴각했고 사마의는 제갈량을 뒤쫓아 노성에 이르렀다가 산에 올라 영채를 세우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. 이 때 위평은 [[가허]]와 함께 여러 차례 싸우기를 청했고 모든 제장들이 싸울 것을 요청하면서 사마의가 출진했다가 위연, [[고상]], [[오반(삼국지)|오반]] 등의 공격을 받아 패한다. == 창작물에서 == === [[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]] === [[파일:가허위평.png]] 사마의가 장합에게 붙여준 잡장으로 이름만 언급된다(...) === [[삼국전투기]] === [[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]]의 카와로 등장하며, 소개에서 학소와 세트 메뉴였던 위평은 학소의 메이저진입과 함께 새로운 파트너인 가허를 찾았다고 한다. 위연이 나와서 싸우라고 도발할 때 사마의가 가만히 있자 이럴 바에 우리가 이 멀리까지 나올 이유가 없지 않냐고 했으며, 가허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자 이에 동조했다. 촉군과 싸우러 나갔다가 오반에게 죽었으며, 이를 본 [[위연]]이 오반에게 누가 내 먹이를 먹으라고 했냐고 한다. ~~ 오반: 아... 아직 [[장합|제일 맛있는 게]] 남았잖아요.~~ === [[대군사 사마의]] === [[사마의]]가 황명으로 검각을 통해 군사를 둘로 나누어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기 위해 장합이 선봉으로 세우면서 사마의의 명으로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장합의 뒤를 따르라는 명령을 받았다. [[분류:위나라의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