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위(춘추시대) 군주)] ||||||<table align=right>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위(衛)나라 31대 국군[br]{{{+1 영공}}}[br] 靈公}}}''' |||||||||| ||||<bgcolor=#008080> '''[[성씨|{{{#ece5b6 성}}}]]''' |||| 희(姬) || ||||<bgcolor=#008080> '''[[본관|{{{#ece5b6 씨}}}]]''' |||| 위(衛) || ||||<bgcolor=#008080> '''[[휘|{{{#ece5b6 휘}}}]]''' || 원(元) || ||||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아버지}}}''' |||| [[위양공]](衛襄公) 희악(姬惡) || ||||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아내}}}''' |||| 남자(南子) || ||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생몰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540년 ~ 기원전 493년 || ||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재위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534년 ~ 기원전 493년 || [목차] [clearfix] == 소개 == [[중국]] [[춘추시대]] [[위(춘추전국시대)|위(衛)나라]]의 제31대 [[군주]]. 위양공의 아들. [[위출공]]의 할아버지. [[위후장공]]의 아버지. [[공자]](孔子)에게 악평을 들을 정도로 [[암군]]이다. == 생애 == 위 양공 9년(기원전 535년), 아버지 위 양공이 사망하자, 그 뒤를 이어서 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.[* [[출생의 비밀]]에 대해서는 [[위양공]] 문서 참조.] 위 영공 원년(기원전 534년), 그는 7살의 나이로 즉위식을 거행했다. 위 영공 4년(기원전 530년), 위 영공이 [[진경공(33대)|진경공]](晉頃公)의 즉위를 축하했다. 그런데 작위가 후작으로 같기 때문에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.[* 춘추에서 위 영공이 최초로 까이는 기록이다.] 위 영공 5년(기원전 529년) [[진(춘추전국시대)|진(晉)나라]], [[노나라]], [[송(춘추전국시대)|송(宋)나라]], [[정나라]] 등과 평구에서 회맹했다. 위 영공 12년(기원전 522년), 제표(齊豹), 북궁희(北宮喜), 저사포(褚師圃), 공자 조(公子 朝)가 반란을 일으켰다. 그들은 위 영공의 형 집을 죽이고 위 영공은 피난했다. 위 영공 13년(기원전 521년), 위 영공이 돌아오니 공자 조는 송나라에 구원을 요청해 무리들을 안심시켰다. 위 영공 17년~위 영공 19년(기원전 517년 ~ 기원전 515년), 2차례 북궁희는 제후들과 회맹했다. 이때 반란이 평정되었다. 위 영공 30년(기원전 504년), 진(晉)나라, 노나라, 송나라, [[채나라]]의 제후들과 회맹했다. 위 영공이 사람을 보내 주왕의 신하인 강홍에게 축하 의사를 보냈는데, 그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였다. 위 영공 32년(기원전 502년), 양호(陽虎)가 진(晉)나라를 치면서 길을 위나라에 빌려 달라하니~~아직 명목이 있는 강대국인 진(晉)나라를 노나라의 힘으로 치려하다니 무슨 배짱일까?~~ 위영공이 크게 노해 미자하를 보내 습격하게 했다. 공숙 문자가 간하니 위 영공은 미자하를 불러들였다. 위 영공 33년(기원전 501년), 사람을 보내 [[제경공(26대)|제경공]](齊景公)과 짜고, 위나라의 행인 북궁결 등의 북궁씨(北宮氏) 세력을 약하게 했다. 위 영공 34년(기원전 500년), 진(晉)나라와 사타에서 회맹했는데, 그 내용이 굴욕적이었는지라 성하의 욕이라고 했다. 위 영공 35년(기원전 499년), 위 영공이 중모(中牟)를 쳤다. 위 영공 36년(기원전 498년), 진(晉)나라가 위나라의 수도를 포위했다. 위 영공은 굳게 지키면서 나가 싸우지 않았다. 진군이 물러나자 위나라는 사타에서 강화를 했다. 위 영공 40년(기원전 494년), 위 영공은 공숙 술, 조양, 북궁결, [[위후장공|태자 괴외]](太子 蒯聵), 공맹 구(公孟彄) 등을 몰아냈다. 위 영공 41년(기원전 493년), 위 영공이 죽었다. 공자 영(公子 郢)이 끝내 거절하자 결국 남자(南子)는 괴외의 아들인 첩(輒)을 세우니 그가 바로 위 출공이다. == 여담 ==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라 그런지 위나라 군주들 가운데서는 남아있는 일화가 많은 편. 거의 전부, 아니 몽땅 안습한 것들 뿐이라는게 문제지만, 공자에게 진법(陣法)[* 전쟁터에서 진치는 법.]을 물었다가 까인 적[* 심지어 [[논어]]에서는 이 일화가 한 챕터의 서두에 위치하기 때문에, 챕터의 첫 문장에서 챕터 이름을 따오는 전통에 따라 논어의 15번째 챕터 이름은 '''위영공편'''이다. 챕터 내내 위영공이 등장하는건 서두의 그 한 장면 밖에 없는데도! ]도 있고, 좀 후대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한비자에 수록된 [[망국지음]]이나 [[여도지죄]] 등에도 주연으로 등장한다. 항목을 확인하면 알겠지만 전부 까이는 역할이다. [각주] [[분류:위(衞)나라의 군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