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대한민국 정부)] ||<-3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gcolor=gray> '''{{{#fff [[제4공화국|{{{#fff 제4공화국}}}]][br]{{{+1 위기관리정부}}}[br]危機管理政府}}}''' || ||<-3><bgcolor=#fff,#191919> '''{{{#gray [[1979년|{{{#gray 1979년}}}]] [[12월 6일|{{{#gray 12월 6일}}}]] ~ [[1980년|{{{#gray 1980년}}}]] [[8월 16일|{{{#gray 8월 16일}}}]]}}}''' || ||<-2><width=50%> '''{{{#fff 출범 이전}}}''' ||<width=50%> '''{{{#fff 이후}}}''' || ||<-2><rowbgcolor=#fff,#191919> '''[[박정희 정부|{{{#835b38 박정희 정부}}}]][br],,,[[최규하|{{{#gray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}}}]],,,''' || '''[[전두환 정부|{{{#808080 전두환 정부}}}]]'''[br],,,'''[[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|{{{#black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}}}]]''',,, || ||<width=25%> '''{{{#fff 대통령}}}''' ||<-2><colbgcolor=#fff,#191919>'''[[최규하]]''' ,,,(10대),,,|| || [[국무총리/명단|'''{{{#fff 국무총리}}}''']] ||<-2>'''[[신현확]]''' ,,,(1979.12.13~1980.5.21),,, || || [[여당|'''{{{#fff 여당}}}''']] ||<-2>'''[[무소속|{{{#gray 없음}}}]]'''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통일주체국민회의]]에서 [[대한민국]]의 제10대 [[대한민국 대통령|대통령]]으로 선출된 [[최규하]]를 필두로 하여 [[1979년]] [[12월 6일]][*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업무를 시작한 날이자,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날이기에 이 날을 기준으로 작성함. 실제 취임일은 [[12월 21일]].] 수립되어서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기까지 약 8개월간 존속한 [[정부]]를 이르는 말.[* 최규하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신을 필두로 한 정부를 위기관리정부라고 지칭한 말에서 유래.] [[대한민국 제4공화국|제4공화국]], 즉 [[유신헌법]]상의 두 번째 대통령이지만, 임기 중 개헌을 목표로 했기에 대개는 제4공화국과 [[대한민국 제5공화국|제5공화국]] 사이의 과도정부로 본다. 그러나 후에 [[12.12 군사반란]]으로 실질적으로 기능이 정지된다. 즉, 최규하 대통령이 외압 없이 실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기간은 '''6일''' 정도였다.[* 실제 취임식은 12월 21일에 진행되었으며, (최규하가) 정식으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이미 [[전두환]]이 [[바지사장|실권을 장악해 버린 뒤였다.]]] == 출범 == [[1979년]] [[10.26 사건]]으로 당시 제9대 대통령의 임기를 수행 중이던 [[박정희]]가 [[김재규]]에게 [[저격]]당하면서 사망했다. 이로 인해 당시 [[국무총리]]를 역임하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, 박정희의 권력을 승계받았다.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1979년 [[11월 10일]] 특별 담화를 발표하며 기존 제4공화국 헌법을 통해 간선으로 후임 대통령을 선출하되, 빠르게 민주화 헌법으로 개헌하여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. 위 특별 담화에 따라 [[12월 6일]]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을 통해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을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위기관리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. == 정치 == 비록 대통령 유고에 따른 계엄 조치로 인해 [[정승화]] [[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|육군참모총장]]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, 계엄령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유신 헌법 제정을 통한 장기 집권으로 인해 국민의 신임을 잃어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[[김재규]]에 의해 [[10.26 사태|암살당하자]] 그간 박정희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[[서울의 봄|억눌려왔던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왔다.]]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유신헌법의 폐지와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했다. [[윤보선]]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원로들이 이런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 최규하 대통령에게 유신 폐지와 새로운 민주선거를 통한 새 정부의 구성을 요청했다. 윤보선 등 원로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최규하 대통령은 선출 후 이틀 뒤인 [[12월 8일]], 악명 높았던 비상조치 9호를 해제해 그간 금지됐던 개헌 논의를 허락하며 이에 호응했다. 하지만, 이 순간까지도 누구도 4일 뒤에 있을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. == [[12.12 군사반란]] == 간선을 통한 정부 출범 후 며칠 지나지 않아 [[전두환]], [[노태우]] 등이 주도하는 신군부([[하나회]])의 군사반란으로 아직 정식 취임식조차 치르지 못한 위기관리정부는 실질적으로 기능이 정지된다. == [[5.18 민주화운동]] == 전두환에 의해 실권을 빼앗긴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음에도 불구, 결국 이것을 막지 못했다. 하지만, 당시 대통령에게는 권력이 전혀 없었기에 마냥 [[비판]]할 수만은 없다. == 대통령의 사임 == [[12.12 군사반란]]으로 [[전두환]]을 필두로 한 하나회가 대한민국의 권력을 장악한 후, [[5.18 민주화운동]]을 진압한 뒤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임을 종용하여 최규하 전 대통령은 사임하였고, 동시에 위기관리정부 또한 해산했다. == 여담 == 제4대 대통령 [[윤보선]]과 자주 비교된다. 윤보선은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이다 보니 당시 실권자였던 [[장면]] 총리에게 묻힌다. 그러나, 윤보선은 [[정치인]]이었기에 [[이승만]], [[박정희]] 등과 모두 [[선거]]에서 맞붙은 전적이 있다. 반면에 최규하는 정치인이 아닌 [[외교관]]이었다. [[김종필]]의 후임자 추천으로 [[국무총리]] 직책에 올랐으나,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며, [[10.26 사건]]이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지않고 그 직책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을 인물이었다. 윤보선은 [[의원내각제]] 하의 대통령이긴 해도 [[5.16 군사정변]]을 진압하지 않고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여 [[대한민국]]을 18년간의 군사정권하에 들어가게 만든 책임이 있다. 최규하와는 달리 2년간 실제로 권력을 행사했었고 5.16 군사정변 당시에도 최규하와 달리 본인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행사하지 않았다. 이 점이 최규하와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다. [[분류:제4공화국]][[분류:최규하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