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위(춘추시대) 군주)] ||||||<table align=center>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위(衛)나라 8대 국군[br]{{{+1 경후}}}[br] 頃侯}}}''' |||||||||| ||||<bgcolor=#008080> '''[[성씨|{{{#ece5b6 성}}}]]''' |||| 희(姬) || ||||<bgcolor=#008080> '''[[본관|{{{#ece5b6 씨}}}]]''' |||| 위(衛) || ||||<bgcolor=#008080> '''[[휘|{{{#ece5b6 휘}}}]]''' || 실전 || ||||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아버지}}}''' |||| [[위기백]](衛箕伯) || ||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생몰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???년 ~ 기원전 857년 || ||<bgcolor=#008080> '''{{{#ece5b6 재위 기간}}}''' || 음력 || 기원전 868년 ~ 기원전 857년 || [[중국]] [[주나라]]의 제후국 [[위(춘추전국시대)|위(衛)나라]]의 제8대 [[군주]]. [[위정백(7대)|위정백]]의 아들. [[위희후]]의 아버지. 기원전 869년, 위 정백이 죽고 그 아들인 위 경후가 뒤를 이었다. 그는 [[주이왕]]에게 뇌물을 바쳐 후작으로 승진했다.[* 사기색은에서 서경 강고편에서 강숙을 “맹후”라 부른 구절을 들어 원래 강숙은 후작이었고 또 제후의 맏이로서 '방백'이었기 때문에 이후 강숙의 후예들이 '백'을 칭한 것은 '방백'의 의미며 사기에 경후 때에 뇌물을 바쳐 후작이 되었다는 것은 이때에 방백의 권위를 잃어 보통의 제후와 같은 칭호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. 다만, 너무 옛날의 일이라 기록이 적어 진실은 저 너머에.....] 위 경후 10년(기원전 857년), 위 경후가 죽고 그 아들인 위 희후가 뒤를 이었다. [각주] [[분류:위(衞)나라의 군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