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1928년 출생]][[분류:가요]] [목차] == 개요 == [[이탈리아]] 출신 [[살레시오 수도회]] 수사신부.[* 성직수사, 수도사제라고도 한다. 흔히 볼 수 있는 [[교구]] 소속 [[사제(성직자)|사제]]가 아니라 [[수도회]] 소속 수도자로 [[성품성사]]를 받고 성직자로서 소임을 하는 사제] 세례명은 빈첸시오, 이탈리아 이름은 빈첸초 도나티(Vincenzo Donati). == 약력 == * 1928년 [[이탈리아]] 중부 해변도시 파노 출생 * 1939년 [[살레시오 수도회]] 입회 * 1944년 첫 서원 * 1950년 [[일본]]에 [[선교사]]로 파견됨 * 1954년 일본 [[도쿄]]에서 [[성품성사|사제 수품]] 후 일본 [[미야자키현]] 소신학교에서 신학생 지도신부 소임 * 1962. 3. 30 : 일본관구에서 [[한국]] 지원 입국 * 1967~1980 : 동창회 지도신부 동창회 신문 ‘벗’지 발행, 총동창회 ‘벗들의 큰 모임’을 결성 * 1972~1980 : [[살레시오중학교]]ㆍ[[살레시오고등학교]] 성무감신부 * 1975년 : 학생들 사이에 ‘젠(GEN)의 운동’을 일으킴 * 1982년 : [[아프리카]] [[케냐]] 선교사로 지원하여 한국을 떠나심 * 1994년 : 아프리카 [[수단 공화국]]에 선교사로 파견된 이후 현재까지 사목 중 == 한국에서의 활동 == 원선오 신부는 1928년 [[이탈리아]] 중부 파노에서 출생하여 [[살레시오 수도회]]에 입회, 1944년 첫 서원을 하고, 1950년 [[일본]] [[선교사]]로 파견되었다. 이후 1954년 일본 [[도쿄]]에서 [[성품성사|사제서품]]을 받았다. 또한 1962.3.30. 35세에 일본 관구에서 한국에 지원 입국한 이후, [[서울특별시]] [[영등포구]] [[대림동(서울)|대림동]] [[살레시오 수도회]] 한국관구 본원의 1년 생활을 제외한 19년 동안 [[광주광역시 북구]] 중흥동 371번지에 있던 당시 [[살레시오중학교]]ㆍ[[살레시오고등학교]][* 예전에는 '사레지오'라고 했다.]에서 교감과 성무감(교목: 학생 생활지도 및 상담)으로 재임하며 학생들을 지도하였다. 아코디언을 능숙하게 즐겨 연주하던 원선오 신부는 재학생들에게 [[성경]] 공부를 지도하는 중에 틈틈이 <나는 포도나무요> 등의 수 많은 성가를 직접 작곡하여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쳤다. 재임기간에는 세계 132국에 '살레시오(SALESIO)'란 같은 이름으로 있는 세계 살레시오 학교의 동창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, 한국 살레시오 동창회 창립에 헌신적으로 노력하며 동창회지 <벗>을 직접 창간하여 한국 살레시오중고등학교 동창회 조직의 기틀을 만들었다. 원선오 신부는 55세인 1982년에 [[아프리카]] [[케냐]] 선교사로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. 떠나시며 정든 한국을 뒤로 하면서 [[김포공항]]에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. [[6.25 전쟁]]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은 이제 안정을 찾았다고 보고, 자신을 더욱 더 필요로 하는 곳은 열악한 아프리카라고 판단하였다고 한다. 살레시오 중고등학교 출신의 졸업생 수천 명이 기억하는 원 신부는, 학교 정문 앞의 사비오상 앞에서 오직 비가 오나 눈이 오나,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기다리며 서 있는 인자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. 아침 교정에 등교하는 그 많은 전교생들의 이름을 하나씩 외워 일일이 이름을는 친근하게 불러대며 눈 인사나 악수, 그리고 따뜻한 말로 맞이하였던 것이다. 이런 추억을 갖은 졸업생들은 졸업 이후로도 잊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원선오 신부기 얘기했던 것이다. 이전 다니던 다른 학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런 ‘교문 앞 사랑’을 살레시오 출신 동문들은 잊지 못한다. 동문들은 현재 원 신부가 활동하고 있는 [[아프리카]] [[수단 공화국]]을 돕는데 누구보다 앞장 서고 있다. 원선오 신부의 ‘교문 앞 사랑’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. 살레시오 학교들[* [[살레시오초등학교]], [[살레시오중학교]], [[살레시오고등학교]], [[살레시오여자중학교]], [[살레시오여자고등학교]]]과 [[살레시오 수녀회]]가 운영하는 [[유치원]]에서는 아침이면 살레시오회 신부와 수녀는 학생들과 유아들을 기다리며 정문에 서 있다. 그 외에도 [[천주교 서울대교구]] 구로3동 성당의 필립보 신부와 루시아 수녀도 매일 아침 8시 30분이면 성당 정문 앞에 서 있다. 두 사람은 성당 바로 옆 구로남초등학교 아이들과 디지털단지로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. “안녕”, “안녕하십니까.”, “좋은 하루 되세요.” === 'GEN' 운동 전개 === 'GEN'이란 「묵은 사람」을 「새사람」으로 만들어 보자는 운동으로 새 세대 운동을 일으키자는 정신적인 혁명운동이다. [[영어]]로는 'New Generation'이라 하며, 약자로 'GEN'이라 부른다. 젠 운동은 [[이탈리아]] 북부 드리에스테 시에 살았던 ‘카라’라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. 그녀는 [[제2차 세계대전]] 때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,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, 이웃과 형제, 자매, 동료, 나라와 나라 사이에 그칠 줄 모르는 분노와 질투로 가득찬 것을 보고,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는 젊은 세대가 먼저 앞장 서야겠다고 생각했다. 그래서 젊은 세대들이 [[그리스도교]] 정신에 입각하여 암흑을 헤쳐 나가자는 정신적인 혁명운동을 일으킨 것이 그 시발점이다. 이 운동을 원선오 신부는 광주 YMCA 발표회 등으로 전개했다. === 음악가 === [[한국]]에서 생활한 20년 동안 작곡한 500여곡의 성가는 한결같이 [[한국인]]의 정서와 잘 통했으며, 가톨릭 성가 416번 <좋기도 좋을시고>는 우리 가락을 적극 활용한 성가로 꼽힌다. 현재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|가톨릭 성가집]]에 수록된 원 신부 성가 목록은 아래와 같다.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35|35 나는 포도나무요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14|414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15|415 사랑이 없으면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16|416 좋기도 좋을시고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17|417 주여 영광과 찬미를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18|418 새로운 노래를 불러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19|419 밀알 하나가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0|420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오니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1|421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2|422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3|423 천년도 당신 눈에는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4|424 주님을 찬양하라 예루살렘아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5|425 만군의 주님이여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6|426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28|428 무엇을 먹을까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414|429 알렐루야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504|504 우리와 함께 주여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516|516 주여 당신 얼굴을]] [[http://info.catholic.or.kr/sungga/gospelChart.asp?ctxtIndex=518|518 선한 사람 아흔 아홉]] == [[아프리카]]에서의 활동 (1982년 이후) == 이제는 [[한국]]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, 더 어려운 이웃을 찾아 떠난다. 원선오 신부는 1982년 당시 [[살레시오 수도회]] 총장 신부였던 돈 비가노 신부의 [[아프리카]] 프로젝트에 대한 호소를 듣고, 홀연히 아프리카 [[케냐]]로 떠났다. 그 때 원 신부의 나이 55세,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을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, 정작 자신은 별 걱정을 하지 않고 "일단 가고 보자!!"는 생각으로 출발했다.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그 곳에서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고 만족할 수 있었다. === [[케냐]]에서 2년, 그리고 다시 [[수단 공화국]](Sudan)으로 === 원 신부는 ‘편하게 머무르고 싶다’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생각까지도 배제한 체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보다 험하고 어려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. ==== '100개 마을학교 건립 운동' 전개 ==== 원선오 신부는 2011년부터 [[수단 공화국]]에서 학교 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. 2015년 8월 16일 소속 [[수도회]]인 살레시오회를 창립한 [[돈 보스코]] 성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00개의 수단 마을학교 목록을 봉헌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. 사업 초기 원선오 신부와 공민호 야고보 [[수도자|수사]][* 공민호 야고보 수사(Br.Giacomo Comino, 1939년생)는 [[이태석]] ([[세례자 요한]]) 신부의 생애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[[울지마 톤즈]]에도 잠깐 볼 수 있었던 [[살레시오 수도회]] [[수도자]]이며, 직업학교 세팅 전문가로 유명하다. 1992년 이후 아프리카에서 생활하고 있다.]의 고향인 [[이탈리아]]가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, [[유럽]]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지금은 거의 한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. 특히 원 신부가 20년 동안 머물며 가르쳤던 [[광주광역시]] [[살레시오중학교]]ㆍ[[살레시오고등학교]] 제자들과 뜻있는 한국 인사들이 나서고 있다. 2012년 12월 '스텔라 [[김연아]] 학교(STELLA YUNA KIM SCHOOL)', 2014년 5월 '[[김태희]] 베르다 학교(KIM TAEHEE VERDA SCHOOL)' 등으로 이미 절반 이상을 달성하였다. 학교 건립 운동을 추진하시는 까닭은, 지구상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의 60%를 갖고 있는데도 정작 그곳 사람들은 굶어 죽는 현실에 처한 [[아프리카]]의 절대적인 빈곤과 혼란 속에 시달리는 그들의 미래를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, 오로지 교육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. [[남수단]]의 마을학교를 마친 졸업생들이 농업학교에서 실제로 배우고 익힌 영농기술로 곡식을 수확해 낸다면, 그곳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많은 식량을 공급하게 되어 고질적인 영양 결핍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라 확신하였기 때문이다. ===== 2012년 5월 방한 ===== [[광주광역시]] [[살레시오고등학교]] 21회 동문회 초청으로 방한 당시 살레시오고등학교 동문들이 [[아프리카]] [[남수단]]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 건립 기금 5천만 원을 내놓았다. 살레시오총동문회는 광주 [[살레시오고등학교]] 대강당에서 [[남수단]]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일시 방한한 원선오 신부에게 학교 건립 기금 5천만 원을 전달했다. 특히 원 신부가 방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금이 답지하기 시작해 불과 20여 일 만에 1억 5천만 원을 모금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. [[http://v.media.daum.net/v/20120510101611320|'살아있는 聖者' 원선오 신부 30년 만에 귀국]] [[http://v.media.daum.net/v/20120520190505938|아프리카 남수단 학교건립기금 전달]] 한편 원 신부는 마음에 두고 있던 몇몇 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. 그 중 하나가 [[김연아]]였다. 가톨릭 신자인 김연아는 원 신부의 뜻에 동감했고, 그 자리에서 학교 1개를 세우는데 필요한 7,000만 원을 내놓았다. [[http://sports.chosun.com/news/ntype.htm?id=201206030100019970001223&servicedate=20120603|김연아, 편지 1통에 거금 7,000만원을]] [[파일:external/file2.instiz.net/0d89b6526a2899a6a73a2c917a0b0d19.jpg]] (왼쪽부터)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잘 알려진 [[김연아|김연아 스텔라]], 원선오 신부, 공민호 수사 ===== 2014년 방한 ===== 원 선오 신부는 2014년 방한 (9월 22일 ~ 11월 11일) 때 광주 [[살레시오고등학교]] 동창인 국회의원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. [[http://v.media.daum.net/v/20141016181607750?f=o|국회 찾은 수단에서 온 손님]] [[파일:external/888640c695c9f899f468b27e56771c6031661efd69c0a99bbd6834253a4b6097.jpg]] 오른쪽부터 [[우윤근]] 의원[* 2017년 현재 국회 사무총장. 역시 천주교 신자이며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다.], 원선오 신부, 정의화 국회의장, 공민호 수사, 당시 여당 최고위원, 안내 담당 한국 [[살레시오 수도회]] 선교국장이자 현재 살레시오고 이사장(당시 교장) 장동현 미카엘 신부 ===== 2019년 현황 ===== 건강때문에 수단 공화국을 떠나서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살레시오회에 계신다고 한다. http://www.salesian.net/ [[분류:가톨릭 수도사제]][[분류:살레시오회 수도자]][[분류:이탈리아의 가톨릭 선교사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