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한복]] [[파일:녹원삼.jpg]] [clearfix] [목차] == 개요 == [[조선]]의 여성 예복. [[왕비]]와 [[세자빈]]을 비롯해 사대부 여성들까지 색깔과 무늬를 다르게 하여 착용하였으며, 민간의 [[혼례]]를 위한 예복으로도 착용하였다. == 원삼의 유래 == 원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, 학계에서는 조선 초기 단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. 원삼이라는 용어는 양성지[* 조선 전기에 활동한 학자이자 문신이다. 1442년(세종 24) [[집현전]]에 들어가 일하면서 [[세종(조선)|세종]]의 총애를 받았고, [[고려사]], [[세종실록]], [[예종실록]] 등에 참여하였다. ]가 저술한 《눌재집》에서 처음 보인다. "양반 부녀자들이 원삼이라는 것을 지어 입고 흉배를 달아 입었으며 백주대도를 활보하여도 괴이하다 여기지 아니하였다."는 문장에서 당대 여성들이 원삼을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. >이때부터 사라 능단의 값이 뛰어올랐으로 조사(朝士)로서 가난하여 살 수 없는 자는 여자의 옷으로 단령(團領)을 만드니, 조하(朝賀)·조참(朝參) 때이면 반 너머가 다 여자의 원삼(圓衫)이었다. >---- >《조선왕조실록》 연산군 11년 6월 13일 한편, [[연산군]] 시기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원삼은 조선 후기와 달리 남성의 옷인 [[단령]]과 흡사하게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. == 원삼의 착용 제도 == 원삼은 착용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색깔과 무늬, 부속품 등이 모두 달랐다. [[황후]]는 황원삼, [[왕비]]는 홍원삼, [[후궁|비빈]]은 자적원삼, [[공주]]·[[옹주]]·민간의 부녀는 초록원삼을 입어서 구별을 두었다. 또한, [[흉배]]를 달았는데 1681년 《숙종인현후가례도감의궤》에는 왕비가 봉황 흉배를 사용한다고 나왔고, [[영조]] 때의 《국조속오례의서례》에는 왕비는 오조룡을, 왕세자빈은 사조룡을 달도록 하였다. 1847년 [[헌종(조선)|헌종]]의 후궁인 [[경빈 김씨]]는 수(壽) 흉배를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. 초록원삼은 공주와 옹주는 직금 또는 부금으로 만들었고,민간에서 사용할 때는 금박 장식이 없이 소박하였다. 이 밖에 아청색[* 아청색은 검은 빛을 띄는 파란색이다. ]이나 남색의 원삼도 있었다. 일반적으로 원삼을 착용할 때는 머리에 어염족두리에 어여머리를 하여 [[가체]]를 올렸다. 그런데 원삼은 단순히 예복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. 김장생이 쓴 《사계전서》의 상례비요 편을 보면, "부인은 대수(大袖)를 쓰는데, 대수는 곧 원삼(圓衫)이며, 세속에서는 더러 장옷도 쓴다"고 하였으니 부인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를 때는 수의로 원삼을 입히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