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원주 원씨]][[분류:전주시 출신 인물]][[분류:1897년 출생]][[분류:1945년 사망]][[분류:건국훈장 애족장]][[분류: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]] ||||<table align=right><bgcolor=white><:>[[파일:원봉운.jpg|width=300px]] || || 성명 ||원봉운(元奉云) || || 이명 ||원서상(元瑞尙, 元瑞常) || || [[본관]] ||[[원주 원씨]] || || 생몰 ||[[1897년]] [[6월 16일]] ~ [[1945년]] [[6월 6일]] || || [[출생지]] ||[[전라북도]] [[전주시|전주군]] 화산동 || || 사망지 ||[[전라북도]] [[전주시|전주군]] || || 매장지 ||[[국립대전현충원]] 독립유공자 묘역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족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원봉운은 1897년 6월 16일 전라북도 전주군 화산동에서 태어났다. 그는 [[원주 원씨]] 시중공파 25대손으로, 전주에서 평생을 살았다. 그러던 1944년 10월 28일,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. >"지난해 5월 [[태평양 전쟁]] 중, 솔로몬 군도에서의 교전 결과 미국 군함 2척이 격침되고 일본 군함은 5척이나 격침되었을 뿐 아니라 많은 전사자가 발생했다. 그러나 일본 측의 피해 내용은 발표되지 않고 미국 군함 2척만 격침되었다고 보도되고 있으니 전황 발표를 믿을 수 없다." >"또한 일본은 [[내선일체]]를 부르짖고 있지만 실제는 조선 사람을 극도로 차별하고, 모든 배급에 있어서도 일인에게는 어른 아이 구별없이 1인당 100돈씩 주고, 조선 사람에게는 1호 당 100돈을 배급하고 있으니 이건 내선일체가 아니라 민족차별이다."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44년 12월 30일 전주지방법원에서 해군형법, 조선임시보안령 등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다가, 경찰조사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빈사상태가 되자, 1945년 5월 11일 [[형집행정지]]로 출옥되어 가료중 출옥 26일 후인 1945년 6월 6일에 사망했다.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원봉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.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[[국립대전현충원]]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