尉遲楷 생몰년도 미상 [[삼국시대(중국)|삼국시대]] 위나라의 장수. [[244년]]에 위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해 수도인 환도성까지 함락당할 위기에 빠졌다가 [[246년]]에 역습을 받고 물러났는데, [[259년]]에 병력을 이끌고 [[고구려]]를 공격했다가 [[중천왕]]이 정예 기병 5천을 골라 [[양맥 전투|양맥 골짜기에서 대결을 펼쳤고 끝내 8천여 명의 병력을 잃고 퇴각했다.]] [[삼국사기]]에는 울지로 기록되어 있는데, 하필 [[인종(고려)|인종]]의 이름이 해(楷)였기에 [[피휘]]한 것이었으며, 주석으로는 울지해의 이름이 인종의 묘호를 뜻하는 장릉(長陵)으로 지칭해서 이름을 범했다는 내용을 통해 삼국사기가 인종 사후에 판각되었음을 보여준다. 울지해의 성씨인 울지씨는 [[선비족]]의 성씨으로 울지씨는 [[남북조시대]]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북위의 유력 부족으로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. 대표적인 인물로 [[북주]] 태조 [[우문태]]의 사위 울지형[* 나중에 [[양견]]의 권력찬탈에 반대하여 업군에서 반란을 일으켜 초전에 [[우중문]]을 격파하는 등, 활약했지만 결국 [[고경]], [[우문술]]에게 진압되고 만다.] [[북제]] 정벌에서 활약한 울지근, [[당태종]]의 공신으로 활약한 [[울지경덕]]이 있다. 고구려의 명장 [[을지문덕]]이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다. 그 이전에는 한나라 때 서역 지방에 있었던 국가인 우전국(于闐國)이 있었는데, 우전국의 귀족들 중에서 울지씨를 사용한 귀족이 있어서[* 임동석 교수가 번역한 백가성(百家姓)이라는 책의 울지씨 항목의 해설 내용.], 남북조시대 이전 시대인 한나라 시대와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. 또한, 尉의 음은 위, 울 둘인데, 사람의 성에는 울로 발음을 하므로 위지는 틀린 표기다. [각주] [[분류:위나라의 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