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:><-10><#000000>'''[[유연#s-1.3|{{{#ffffff 유연의 역대 가한}}}]]''' || ||<width=30%><:> 유연 건국 ||<:> {{{+1 ←}}} ||<:><width=30%><#000000> '''{{{#ffffff 초대 구두벌가한 욱구려사륜}}}''' ||<:> {{{+1 →}}} ||<:><width=30%> 2대 애고개가한 [[욱구려곡률]] || ||<tablealign=center> '''[[가한|한호]]''' || 구두벌가한(丘豆伐可汗) || || '''[[성씨|성]]''' || 욱구려(郁久閭) || || '''[[휘]]''' || 사륜(杜侖) || || '''생몰기간''' || ? ~ 410년 || || '''재위기간''' || 402년 ~ 410년 || [목차] == 개요 == '''욱구려사륜'''(郁久閭社崙, ? ~ [[410년]])은 [[유연]]의 제1대 [[카간]](재위: [[402년]] ~ [[410년]])이다. 칸호는 '''구두벌가한'''(丘豆伐可汗)이다. 온흘제의 아들이다. == 생애 == 유연은 일찍이 [[북위]]의 전신인 [[대나라]]에 복속하였다. [[391년]]에 유연이 북위에게 패배하였고, 사륜과 그의 형제 힐귀지(詰歸之), [[욱구려곡률|곡률]](斛律), 갈다한(曷多汗)은 포로로 잡혔다. 이후 온흘제가 북위에 투항하자 [[도무제]]는 그들 부자를 운중(雲中)으로 옮겨 살게 하였다. [[394년]], 갈다한이 부친을 버리고 서쪽으로 도망쳤으나 북위의 장손비(長孫肥)에게 살해되자 사륜은 수백 명을 데리고 백부 [[욱구려필후발|필후발]](匹候跋)에게 투항하였다. 필후발은 아들 계발(啓拔), 오힐(吳頡)을 파견하여 그를 감시하게 하였다. 사륜은 계책을 내어 필후발을 습격해 죽였고, 이후 오원(五原) 서쪽의 여러 부(部)들을 약탈한 뒤 막북(漠北)으로 달아났다. 사륜은 이후 [[후진(오호십육국시대)|후진]]의 [[요흥]]과 화친을 맺고 북위의 장수 화돌(和突)을 쳐 패배시켰으며, 요흥의 속국인 삭고연(素古延), 출불(黜弗) 제부(諸部)를 구제하고 [[철륵]]을 정복하였다. [[402년]], 사륜은 고차부(高車部)의 땅을 탈취하여 왕정(王庭)을 세우고 스스로 구두벌가한(丘豆伐可汗)을 칭하였다. 이후 사륜은 사방으로 전쟁을 일으켜 여러 부(部)들을 병탄하니 사졸과 말은 번성하고 강해졌고, [[중국]]의 북방에서 웅거하였다. 사륜의 땅은 서쪽으로 언기(焉耆), 동쪽으로 [[고구려]], 남쪽으로 대막(大漠)에 이르렀으며 곁에 있는 소국들을 모두 복속시켰다. [[404년]], 유연에 내란이 일어났다. 사륜의 종제(從弟)인 열대(悅代), 대나(大那) 등이 사륜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으나 발각되었고, 열대와 대나는 북위로 달아났다. [[410년]] [[5월]], 북위가 유연의 땅으로 진공하자 사륜은 도망치다가 길에서 사망하였다. 사륜의 아들 도발(度拔)이 나이가 어렸으므로 사륜의 동생인 곡률을 카간으로 세웠다. [[분류:생년 미상]] [[분류:410년 사망]] [[분류:카간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