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attachment/Naoie.jpg]] 우키타 나오이에의 목상 宇喜多直家 ([[1529년]] ~ [[1581년]]) [목차] == 개요 == [[일본]] [[전국시대(일본)|전국시대]] 비젠(備前)국의 [[다이묘]]. 통칭은 사부로우에몬노조(三郞右衛門尉). 일명 '비젠의 효웅'. 조부의 복수를 위해 시마무라 모리자네를 암살한 것을 비롯, 원수인 나카야마 노부마사(中山信正)나 사이쇼 모토쓰네(穝所元常) 등을 모살하는 등 모략의 달인으로 평가된다.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, 항상 승자의 편에 서기 위한 줄타기 외교와 처세에도 능수능란했다. 죽기 직전까지도 가문의 앞날을 위해 책략을 꾸몄던 대단한 모략가. == 생애 == 1529년 우키타 오키이에(興家)의 아들로 태어났다. [[1534년]] 조부 요시이에(能家)가 시마무라 모리자네(島村盛實) 등에 의해 암살당해 아버지와 함께 도주하였다. 성인이 된 후에는 우라가미 무네카게(浦上宗景)를 섬겼다. 나오이에는 책모에 뛰어나 우라가미 씨의 세력확대 와중에 자신의 영지를 차곡차곡 넓혀갔다. [[1569년]] 결국 [[오다 노부나가]](織田信長), 아카마쓰 마사히데(赤松政秀)와 결탁하여 주군인 우라가미 무네카게에게 반기를 든다. 하지만 아카마쓰의 패배와 오다의 회군으로 무네카게에게 항복하여 용서를 빌게 된다. [[1574년]]에 무네카게의 어린 조카손자인 히사마쓰마루(久松丸)를 옹립하여 다시 반기를 들었다. 다양한 모략으로 무네카게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, 결국 비젠 국을 손에 넣었다. 필요가 없어진 히사마쓰마루는 [[독살]]되었다. 이후 우라가미 잔당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힘을 쏟는다. [[오다 노부나가]]의 명을 받은 [[도요토미 히데요시|하시바 히데요시]](羽柴秀吉)가 진격해오자, 나오이에는 저항 끝에 노부나가에 복종하게 되었다. 이후 각지를 전전하며 모리(毛利) 씨와 전투를 되풀이했다. [[1581년]] 12월에 오카야마 성에서 사망한다. 이때 그의 나이 53세였다. 사인은 출혈성의 항문질환으로 대장암아니면 [[치질]]이었던 것 같다. 평생 말안장 위에 있다 보니 [[항문]]이 남아나질 않았겠지만, 효웅의 말로로서는 뭔가 웃프다. 후사는 어린 아들 [[우키타 히데이에]]가 이었다. 사실 이 과정에서 생애 마지막 모략을 사용한다. 당시 아들은 너무 어렸고 자신은 여러 과정에서 적을 영 많이 만든지라 가문이 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. 그런 상황에서 자기 후사의 후견인이 될 만한 인물을 고민한 끝에 [[하시바 히데요시]]를 불러들여 그에게 아내와 아들의 후견을 부탁하고 죽는다.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걸 받아들였는데... 그 방법이 과부가 된 나오이에의 아내를 자기 첩으로 삼고 히데이에를 자기 양자로 들인 것이었다. 그래도 히데이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지방에서 후손을 현재까지 이어나가고 있으니 자기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. 마지막까지 영악한 효웅이었다. == 평가 == 일개 도망자에서 다이묘로 오르기까지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[[암살]]·모살해나간 탓에 일명 ''''비젠의 효웅''''이라는 이명이 붙어 있다. 이 시기 효웅 소리를 듣는 인물인 [[사이토 도산]](齋藤道三)이나 [[마츠나가 히사히데|마쓰나가 히사히데]](松永久秀) 등을 보면 알겠지만, 비정한 책략가의 이미지로 기록에 남았다. 또 뛰어난 모략으로 인해 이즈모(出雲)의 [[아마고 츠네히사|아마고 쓰네히사]](尼子經久), 아키(安藝)의 [[모리 모토나리]](毛利元就)와 나란히 주고쿠(中國) 지방의 3대 모장(謀將)으로 불리기도 한다. 나오이에는 다른 모략가들보다도 무시무시한 인물로 평가되는데, 주로 주가를 뒤엎고 권력을 찬탈한 것이나 암살, 계략 등 음흉한 수단을 사용한 것이 이런 무장들의 악평의 이유인데, 나오이에는 여기에 더해 '''자신의 직계 가족, 자식'''마저 계략의 도구로 쓰거나 배신해서 죽게 만드는 등 훨씬 잔혹한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다.[* 장인을 죽인 것을 시작으로, 딸을 시집보내 안심시켜둔 후 기습공격해서 '''딸과 함께''' 사위 집안을 쓸어버리는 행동을 '''수 차례나''' 저질렀다. 이게 친족을 배신하는 패륜행위임은 물론이고, 정치적으로도 결혼은 엄연한 동맹관계 수립이므로 사위를 공격한 건 '''같은 편을 뒷통수쳐서 죽인''' 것에 해당한다.] 이것 때문에 가족에게까지도 두려움을 사서, 동생 타다이에는 "형은 뭘 생각하는 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므로 형을 만날 때는 '''항상 속에 사슬갑옷을 껴입었다'''"라고 했을 정도. 한편으로는 가신을 아끼고 권농과 절약을 통해 병량을 비축했다는 일화도 있다. 또 계략을 꾸미더라도 되도록 나오이에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방법을 택하고 가신단에게 피해를 강요하거나 숙청하는 일은 없었으며, 계략만이 아닌 전투에도 능했기 때문에 가신단의 신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. 조카마치(城下町)를 활성화했고, 나오이에와 히데이에 2대의 노력으로 오카야마(岡山) 성이 상업의 중심지가 되기에 이르렀다. == 대중 매체에서 == 캐릭이 캐릭이다보니 주인공으로 다루어진 적은 전혀 없고,[* 소위 천하인이라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, 도요토미 히데요시, 도쿠가와 이에야스등과의 접점이 적다는 점, 게다가 친척이나 가신의 딸을 양녀로 삼아 적에게 보낸 뒤, 방심하면 암살+독살로 제거하는 그의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환영받은 적이 없다. 에도시대 초기 히데요시의 생애를 다룬 전기 '태합기'에서도 사이토 도산이나 마쓰나가 히사히데에 버금가는 악당으로 묘사되었다.] 문학작품이나 게임에서 주인공이 직접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다. 다만 '난세의 효웅이었다'라고 설명하고 넘어가는 정도 || [[파일:宇喜多直家.jpg]] || [[파일:宇喜多直家2.jpg]] || ||<-2>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|| || [[파일:宇喜多直家30.jpg|width=400]] || [[파일:대지나오이.jpg|width=400]] || ||<-2>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|| [[노부나가의 야망]] 시리즈에서는 비교적 높은 능력치를 자랑하며, 특히 지력과 정치력에 특화되어 있다. 당연히 야망이 높다. 책략가에 걸맞는 능력치와 얼굴 그림을 가지고 있다. [[무장풍운록]], [[천상기]], [[열풍전]], [[람세기]]에서는 얼굴 그림이 위의 목상과 똑같이 생겼다. [[노부나가의 야망 창조|창조]]에 와서도 85/74/96/89 의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어 일급 무장인 점은 여전하다. 개인 전국전으로 우라카미 가문을 무너뜨리고 하극상일 일으키는 것과 가문 재흥 이후 영지인 오카야마 성을 본성으로 발전시키는 이벤트가 존재한다. [[파일:external/news.walkerplus.com/245434_615.jpg]] [[2014년]] [[NHK 대하드라마]] [[군사 간베에]]에도 등장하였다. 마침 히메지와 가까운 비젠 지방이기 때문에 나름 비중있게 등장. NHK 대하드라마에서 특이한 인물이나 기벽이 있는 인물을 즐겨 연기하던 진나이 타카노리가 열연했다. 독살의 달인이라는 점이 유감없이 묘사되었는데, 주인공인 [[구로다 간베에]]와 면담하는 도중 가신이 갑자기 독을 마시고 쓰러져 죽어버리는 등 계략가로 유명한 칸베에조차도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만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인물이다. 병으로 죽으면서 아들 히데이에를 도요토미 가문에 맡긴다. [[분류:센고쿠 시대/인물]][[분류:1529년 출생]][[분류:1581년 사망]][[분류:소화기질환으로 죽은 인물]][[분류:다이묘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