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단양 우씨]][[분류:달서구 출신 인물]][[분류:1875년 출생]][[분류:1948년 사망]][[분류:건국포장]] || 성명 ||<(> 우승기(禹升基) || || 자 / 호 ||<(> 덕유(德有) / 월계(月溪) || || 본관 ||<(> [[단양 우씨]][* 판서공파 28세손 기(基) 항렬] || || 생몰 ||<(> [[1875년]] [[4월 8일]] ~ [[1948년]] [[6월 5일]] || || [[출생지]] ||<(> 경상도 대구도호부 월배면 상인동[br](현 [[대구광역시]] [[달서구]] [[상인동]])[* [[단양 우씨]] 판서공파 집성촌이다.[[http://www.prsinmun.co.kr/news/view.html?no=42414&cate=07|#]] 독립유공자 [[우경동]]·[[우병기]]·[[우성동]]·[[우찬기]]·[[우하교]]도 이 마을 출신이다.] || || 추서 ||<(> 건국포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우승기는 1875년 4월 8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월배면(현 대구광역시 달서구) 상인동에서 태어났다. 그는 1919년 3월 [[파리 강화 회의]]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[[김복한]]을 중심으로 한 [[충청도]] 유림과 [[김창숙]]·[[곽종석]] 등의 영남유림 137명이 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서 같은 문중 사람인 [[우경동]]·[[우성동]]·[[우찬기]]·[[우하교]]·우하삼(禹夏三)과 함께 서명하였다. 이들은 '파리장서'를 통해 일제가 자행한 [[명성황후]]·[[고종황제]]의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하였다. 그러나 이 일은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성주군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당시 독립청원서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[[http://e-gonghun.mpva.go.kr/user/ContribuReportDetail.do?goTocode=20001&mngNo=405|송회근]](宋晦根)이 붙잡히는 바람에 발각되었다. 이 때문에 우승기도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. 다만, 일제는 이들 유림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이 더욱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. 출옥 후 복역 중인 [[장석영(독립운동가)|장석영]]·[[http://e-gonghun.mpva.go.kr/user/ContribuReportDetail.do?goTocode=20001&mngNo=8720|송준필]](宋浚弼) 등을 찾아 물심양면으로 수습하며 조용히 지내다가 [[8.15 광복]]을 맞이하였고, 1948년 6월 5일 별세하였다.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