'''優福''' (? ~ 327?) [목차] == 개요 == [[백제]]의 [[왕족]]이자 대신이며 또한 반역자. [[구수왕]]의 아들이며 [[비류왕]]의 서제(庶弟), 즉 배다른 아우였다. 321년 정월에 비류왕은 우복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다. 내신좌평이란 최고위직인 6좌평 중 하나로 왕명의 출납 업무를 맡는 등 오늘날의 국무총리급에 해당하는 직위였다. 그러나 327년 9월에 우복은 북한성에 웅거하여 모반을 일으켰다. 이에 비류왕은 군사를 보내 토벌하도록 하였다. 이후 우복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모반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했으니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. == 기타 == 우복은 왕의 서자로써 왕위계승권을 지니지 못 했는데 이에 대한 불만 때문에 비류왕에 대해 모반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. 때문에 우복이 비류왕보다 먼저 태어났으나 서자의 출신 때문에 왕위를 잇지 못하여 이를 분하게 여기고 반역을 도모했다고 보기도 한다. [[비류]] 시조설에 의거하면 [[고이왕]]계는 선조가 [[우태]](優台)인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는데 본 문서의 우복을 비롯해 고이왕 대 내법좌평 우두(優豆), 고이왕의 동생 [[우수]](優壽), [[개로왕]] 대 건무장군 우서(于西), [[무령왕]] 대 달솔(達率) 우영(優永) 등의 우씨(優氏)가 등장한다는 것에 근거해 고이왕계는 왕성이 우씨(優氏)였다는 가설이 있다.[* 문안식, <백제의 시조전승에 반영된 왕실 교대와 성장과정 추론> , <<동국사학>>40 한국교육학술정보원 , 2004 참조.] [각주] [[분류:백제의 왕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