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조선의 왕족]][[분류:용담 염씨]][[분류:1793년 출생]] [include(틀:역대 조선 부대부인(대원군 부인))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ordercolor=#397664><tablebgcolor=#397664> {{{#gold '''철종의 생모'''}}}[br]{{{#gold {{{+1 '''龍城府大夫人 | 용성부대부인'''}}}}}} || ||<width=50> '''{{{#gold 호칭}}}''' ||<colbgcolor=#fff,#1F2023>'''용성부대부인'''(龍城府大夫人) || || '''{{{#gold 출생}}}''' ||[[1793년]] [[7월 20일]] || || '''{{{#gold 사망}}}''' ||[[미상]]|| || '''[[능묘|{{{#gold 능묘}}}]]''' ||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전계대원군묘|| || '''[[본관|{{{#gold 본관}}}]]''' ||[[염(성씨)|용담]](龍潭) || || '''{{{#gold 부모}}}''' ||부친 염성화(廉星華), 모친 [[지(성씨)|상주 지씨]] || || '''{{{#gold 부군}}}''' ||[[전계대원군]](全溪大院君)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전계대원군]]의 소실이자 [[철종(조선)|철종]]의 친어머니이다. == 생애 == 일생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. 다만 가계가 굉장히 한미했다고 한다. 할아버지 염덕석이 생전에 사과(司果)[* 조선시대 5위에 있던 정6품 무관직.]를, 증조할아버지 염덕석이 통정대부(通政大夫)[* 조선시대 문관의 정삼품 당상관의 품계.]를 지낸 것이 그의 집안 관직 내력의 전부라고 한다. 그리고 조상들의 묘소가 [[강화군]] 양도면 하일리 일대와 강화군 송산에 있었다고 한다.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용성부대부인|#]] 언제 [[전계대원군]]의 소실이 되었는지, 그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역시 알려진 게 없다. 다만 그의 선산이 [[강화군]]에 있는 점, [[전계대원군]]이 귀양 생활 하던 곳이 [[강화도]]인 점을 볼 때, 두 사람은 전계대원군의 유배가 풀린 1830년([[순조]] 30년) 이전에 강화도에서 만난 듯 하다. 슬하에 자녀는 [[철종(조선)|철종]] 1명만 두었다. 언제 사망했는지도 모른다. 다만 《[[철종실록]]》의 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ya_10006027_001|기사]]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ya_10103012_001|들]]을 보면, [[철종(조선)|철종]]이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듯 하다. 1849년(철종 즉위년) 아들 [[철종(조선)|철종]]이 즉위한 후 용성부대부인으로 추증받았고, 더불어 친정 조상들과 형제들도 증직받았다. == 사후 == 묘소는 처음에는 한성부 홍은동에 있었다가, 후에 [[경기도]] [[양주군]] 수동면 답동리를 거쳐 다시 경기도 [[포천시]] 선단동 산11번지 해룡산으로 옮겨졌다. 그곳은 [[전계대원군]]과 [[완양부대부인|완양부대부인 최씨]]를 합장한 묘소의 왼쪽 아래에 있는 언덕이다.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 때에는 그의 조카 염호관과 8촌 동생 염재흥이 궁내부 주사를 지냈다.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용성부대부인|#]] == 여담 == * [[철종(조선)|철종]] 즉위 후 남편이 [[전계대원군]]으로 추봉받을 때, 전계대원군의 처가 조상 3대의 벼슬도 같이 추증했다. 그런데 용성부대부인은 소실이기 때문에, 그의 친정 식구들은 추증받지 못할 뻔했다. 처음에는 전계대원군의 본처인 [[전주 최씨]]의 친정만 증직하자고 했다가, 그래도 왕의 생가인 염씨 집안도 추증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와서 같이 추증했다. === 염종수 사기 사건 === [[철종(조선)|철종]]이 왕위에 오른 후, 용성부대부인의 가문을 사칭한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. [[경기도]] [[파주시|파주]] 근방에 살던, [[염(성씨)|파주 염씨]] 성을 가진 염종수라는 남자가 있었다. 그는 [[철종(조선)|철종]] 즉위 직후, 새 임금의 외가가 용담 염씨라는 것을 알았다. 용담 염씨는 파주 염씨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이다. 그래서 염종수는 자신과 철종이 한 뿌리이며, 왕의 친척임을 내세워 부귀영화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. 그래서 [[철종(조선)|철종]]의 외할아버지인 염성화의 가계가 자신의 가계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 [[족보]]를 위조하는 엄청난 짓을 꾸몄다. 그리고 본인이 철종의 외삼촌이라고 거짓 상소를 올렸다. 가까운 친척 하나 없어 항상 외로움을 느끼던 철종은 염종수 부자를 [[궁궐]]로 불러와 잘 대접했고 [[벼슬]]도 주었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ya_10906004_001|#]]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ya_11002003_001|#]] 그렇게 호강을 누리던 염종수는 완전범죄를 꾸미려고 염성화 [[묘]] 앞에 [[비석]]을 세운 다음, 본관 적는 공간에 '용담(龍潭)' 대신 자신의 본관인 '[[파주시|파주(坡州)]]'라고 새겨 넣는 짓까지 벌였다.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. [[강화도]]에서 살던 '''철종의 진짜 외삼촌이자 용성부대부인의 남동생인'''[[http://www.ganghwa.go.kr/open_content/tour/tour/tourInfoDetail.do?tour_seq=89&tourdiv=cultual_asset&pgno=20|#]] 염보길이 진실을 밝혀냈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ya_11210025_001|#]] 염종수는 왕을 속인 죄로 목이 달아났고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ya_11211007_003|#]] 그의 아들 염희영은 [[제주도]]의 [[노비|관노비]]로 전락했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ya_11211014_001|#]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철종(조선), version=453, paragraph=2.2)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