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용궁 김씨]] ||<-2><tablealign=right><tablewidth=400><tablebordercolor=#000><tablebgcolor=#000><bgcolor=#FFF> {{{#!wiki style="margin: -15px -10px" 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230><tablebordercolor=#FFF><bgcolor=#FFF> '''{{{#000 {{{+1 龍宮 金氏}}}[br]{{{+1 용궁 김씨}}}}}}''' ||}}} || || '''{{{#FFF 관향}}}''' ||<colbgcolor=#FFF>[[경상북도]] [[예천군]] || || '''{{{#FFF 시조}}}''' ||[[김존중]](金存中) || || '''{{{#FFF 집성촌}}}''' ||[[경상북도]] [[예천군]][br][[경상남도]] [[하동군]] || || '''{{{#FFF 인구}}}''' ||12,569명^^(2015년)^^ || [목차] [clearfix] == 개요 == [[경상북도]] [[예천군]]을 본관으로 둔 [[한국의 성씨]]. [[김존중]](金存中)을 시조로 두고 있다. == 유래 == 김존중은 [[경순왕]]의 사남 대안군(大安君) 김은열(金殷說)의 8세손으로[* 다만 이 대안군 김은열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의견이 가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. 조선 후기 <김은열 묘지명>이라는 것이 발견되는데, 이전 시기에는 김은열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어느 기록에서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.], 전통적 인왕사[* 임금의 스승.] 가문에서 태어나 소과(小科)인 남성시[* 南省試, 진사를 뽑는 국사감시.]를 거친 뒤 [[인종]] 땐 대과(大科)에 급제하여 태자시학(太子侍學)이 되었다. [[의종(고려)|의종]]의 즉위 후 좌정언(左正言), 지제고(知制誥)를 거쳐 [[추밀원]]의 좌우승선(左右承宣)에 올랐고, 이어 전조[* 조선으로 따지면 이조+예조이다.]를 겸했다. 이후엔 태자소부(太子少傅)가 되어 금자광록대부(金紫光祿大夫), 이부상서(吏部尙書), 정당문학(政堂文學)을 거쳐서 수문전 대학사(修文殿大學士)를 최종적으로 제수되고 용궁군(龍宮君)에 봉해졌다. == 본관 == 용궁은 [[경상북도]] [[예천군]]애 있는 지명으로, 신라 땐 축산현(竺山縣), 원산현(園山縣)으로 불렸다. [[고려]] 초에는 용주(龍州)라 하다가 현종 3년 용궁현(龍宮縣)으로 개칭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