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역대 가톨릭 교황)] 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-5><#806600> [[교황|[[파일:815px-Emblem_of_the_Papacy_SE.svg.png|height=40]] '''{{{#FFF 가톨릭 교회의 교황}}}''']] || ||<-5> [[파일:72_giovanni_IV.png|height=125]] || ||<width=30%> 제71대 [[세베리노]] ||<width=5%> → ||<width=30%><#806600> '''{{{#FFF 제72대 요한 4세}}}''' || → ||<width=30%> 제73대 [[테오도로 1세]] || * [[라틴어]]: Ioannes IV * [[이탈리아어]]: Giovanni IV * [[영어]]: Pope John IV * 생몰년: ? ~ 642년 10월 12일 * 재위기간: 640년 12월 24일 ~ 642년 10월 12일 [[달마티아]]에서 출생했다. 교황으로 선출된 당시 그는 로마의 대부제(大副祭)였으므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. 640년 12월 24일에 교황좌에 착좌했으며, 동로마 제국의 황제 대신 라벤나 총독이 대행으로서 이를 승인하였다. 2년여간의 재임 기간 동안 그가 한 일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, 첫째는 [[발칸반도]]에 쳐들어온 슬라브족의 피해를 수습하고, 이들을 개종시키는 것이었다. 슬라브족으로 황폐해진 지역 중에는 요한 4세의 고향인 달마티아 지역도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했는데. 거액의 자금을 주어 마르티노를 보내 슬라브족에게 포로로 사로잡힌 달마티아인들을 석방시키도록 하는 한편 성유물들을 수습해 로마에 가져오도록 했다. 둘째로는 단호히 단의론을 이단으로 정죄한 것이었다.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의 [[이라클리오스]] 황제 역시 단의설 신앙고백 문서인 에크테시스(Ekthesis)를 부정하기에 이른다. 셋째로 단의론의 단초를 제공했던 [[호노리오 1세]]에 대해 옹호하였다. 호노리오 1세가 그리스도는 하나의 본성을 지녔다고 말한 것은 단지 그리스도 안에 두 개의 상충되는 본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말한 것 뿐이라고 선언한 것이다. 짧은 재임 기간 중 굵직굵직한 일들을 이뤄낸 요한 4세는 642년 10월 12일에 사망하였으며, 유해는 [[성 베드로 대성당]]에 안장되었다. [[분류:교황]][[분류:동로마 제국의 인물]][[분류:642년 사망]][[분류:성 베드로 대성당 안장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