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양서(오대십국시대))] [include(틀:신오대사)] 王彦章 (863 ~ 923) [[파일:external/www.geocities.jp/076.jpg]] [[자(이름)|자]]는 현명(賢明). [[중국]]의 인물로 [[오대십국시대]] [[후량]]의 최고의 [[용장]]. 군졸로 시작해서 전투마다 군공을 거듭 세워서 결국 후량의 개국후에 봉해진 입지전적인 인물. [[창(무기)|철창]]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항상 선봉에 서서 활약했기에 '''왕철창'''(王鐵槍)이란 별명이 붙었다. 그 까닭에 왕언장을 모시는 사당 또한 '''철창묘'''라 부른다.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하루 해가 지기전에 [[후당]]의 장수 서른 여섯명을 혼자서 모조리 쓰러뜨린 적도 있다고 한다. 그러나 성격이 강직하고 곧은 탓에 후량의 왕인 [[주우정]]에게 미움을 받았으며 또한 그를 시기한 간신들에게 모함을 당하였다. 그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[[후당]]의 공격으로부터 조국인 후량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이미 내부가 썩을대로 썩은 후량은 오래 버티지 못했고 결국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비운을 겪었다. 후량이 멸망한 후에도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결국 후당의 군대에 사로잡혔다. 후당의 왕인 [[장종]] [[이존욱]]은 그의 명성과 무예 실력을 높이 사서 그만 항복하고 자신의 휘하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였지만 정중하게 거절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. 본래 군졸 출신이었기 때문에 [[왕평]]이나 [[석륵]]처럼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읽도록 시키고 곁에서 이를 듣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.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'''"[[호사유피|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.]]"'''라는 글을 읽어주자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죽는 순간까지 이 말을 외울 정도로 좋아했다고 하는데, 그 말처럼 후량 최고의 용장이자 충신으로서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. --역시 [[영웅은 공부 따원 안 한다네]]-- 왕언장의 혼백을 모신 가흥 철창묘는 [[김용(1924)|김용]]의 [[무협소설]] [[사조영웅전]], [[신조협려]]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무대로, [[강남칠괴]]가 어린 시절에 어울려 놀았던 곳이다. 왕언장도 무력으로 유명하지만 민담, 소설 등에서는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[[이존효]]에 가려져서 콩라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. [[수호지]]에서 동창부로 쳐들어간 [[노준의]] 군의 두령들을 [[돌팔매]]만으로 잇달아 쓰러뜨린 [[몰우전]] [[장청(몰우전)|장청]]을 보고 크게 놀란 [[송강(수호지)|송강]]이 장청을 왕언장에 비유한다. [각주] [[분류:오대십국시대/인물]][[분류:863년 출생]][[분류:923년 사망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