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include(틀:다른 뜻1, other1=다른 뜻, rd1=왕십리(동음이의어))] [include(틀:2030서울도시기본계획)] [[파일:external/weekly.chosun.com/2226_58.jpg]] 왕십리오거리와 [[왕십리역]] [include(틀:지도,장소=왕십리,너비=500px,높이=200px)] {{{+1 往十里 / Wangsimni}}}[* 여기서 쓰인 '리'는 행정구역 단위로 쓰인게 아니기 때문에 [[자음동화]]를 반영한 로마자 표기를 써야한다. [[로마자 표기법]] 참고] [목차] == 개요 == 넓게는 [[서울특별시]] [[성동구]] 서북부 지역을, 좁게는 행정동 왕십리도선동, 왕십리2동만을 이르는 지역이다. [* [[성수동]], [[용답동]] 쪽은 왕십리와 가깝긴 하지만 같은 지역으로 포함하기에는 약간 이질감이 있어 왕십리라고는 안 부른다. 역사적으로도 현재의 성동구 중에서도 현재 왕십리라고 부르는 지역이 원래의 [[경성부]] 성동구(1936년 이전에는 고양군 한지면) 지역이고, 성수동은 [[고양군]] 뚝도면, 용답동은 [[경성부]] 동대문구(1936년 이전에는 고양군 숭인면) 지역이었다. 자세한 부분은 [[성동구]] 문서 참조.] 넓은 의미의 왕십리에 포함되는 법정동은 [[상왕십리동]], [[하왕십리동]], [[홍익동]], [[도선동]], [[마장동]], [[행당동]], [[사근동]]이며 [[왕십리로]] 중에서 [[왕십리뉴타운]]~[[한양대]] 구간이다. 넓은 의미의 왕십리 안에서도 두 지역으로 구분되는데, [[경원선]] 선로를 기준으로 서북쪽은 왕십리, [[경원선]] 선로 동쪽은 한양대 혹은 한대앞이라고 부른다. 다만, 마장동은 두 지역 중 왕십리라고 부르는 쪽이다. 원래 인근 [[성동구청]]과 [[한양대학교]]의 배후 상권으로 입지가 탄탄하긴 했지만 상습 침수지였으며, 신당동과 같이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. 원래 2호선, 5호선 환승역이기도 했으나 주민과 주변 직장인 및 한양대 학생 뿐 외부 유동 인구 유입이 거의 없었으며 초거대규모의 신역사가 건설되면서 대부분 유동인구를 흡수하는 바람에 주변 상권이 침체를 겪었다. 그러나 2019년 현재 왕십리는 인근 뚝섬, 옥수동이 신 부촌을 형성하면서 비로소 그 혜택을 보고 있다. 왕십리의 위상을 가장 다르게 만든 것은 2012년의 [[분당선]] 개통으로, 강남구청까지 단 7분, 선정릉역까지 9분에 주파하게 되면서 왕십리가 각광받게 됐다. 중랑천변 공원 및 한양대학교 교정 등 녹지가 많은 장점까지 더해, 살기 좋은 거주지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. === 지명 유래 === [[조선]] 초, [[무학대사]]가 [[태조 이성계]]의 명을 받아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에 지금의 [[한양대학교/서울캠퍼스|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]]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, 북으로 행당산, 서로 매봉산, 동과 남으로 [[청계천]]이 흘러 명당으로 보고 지금의 한양대 캠퍼스 쪽에 도읍을 정하려고 생각하던 찰나에, 한 노인이 소를 끌고 지나가면서 소에게 "야 이 무학같이 미련한 소야"라고 하자, 무학이 깜짝 놀라 그 노인에게 가서 "혹시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아십니까?"하였더니 노인은 '''"북서쪽으로 십리를 더 가보시오. 도읍이 될만한 터가 있을 것이오"'''라고 하고 노인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. 무학대사가 그 말을 따라 십리를 더 걸어 나온 곳이 지금의 [[경복궁]]이다. '''갈 왕(往) + 열 십(十) + 거리 단위 리(里) = "왕십리"'''가 된 것이다. 바로 옆의 [[청량리]]와는 달리 왕십리의 리는 "마을 리(里)"가 아니며, 그렇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동(洞)이름도 '''(상/하)왕십동'''이 아닌 '''(상/하)왕십리동'''이다. --정작 청량리도 청량동이 아닌 청량'''리'''동인 것은 함정이다.-- 노인이 사실은 [[도선대사]]의 혼백이었다는 전승도 있다. [[무학대사]]가 [[경복궁]] 터를 보고 나서 '그런 곳을 점지할 사람은 도선대사밖에 없다'는 걸 뒤늦게 깨달았으나, 이미 다시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. 동명 중에도 [[도선동]]이 있다. 무학대사의 이름도 인근 무학초등학교, 무학중학교, [[무학여자고등학교]], [[하왕십리동]] 무학봉 등에 쓰이는 등, 도선대사와 무학대사에 관한 지명과 교명이 많다. 사극 [[용의 눈물]] 23화에서도 이에 관해 야사로서 소개한 에피소드가 나왔다. 그러나 명칭에 대한 위 유래는 신빙성이 그다지 없는데, 고려시대에 이미 인근 지역을 '왕심리(王深里)' 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. 이것이 표기가 변화하여 현재의 왕십리가 됐다는 설이 좀더 설득력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[* 애초에 무학대사는 천도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않았다. 오히려 [[하륜]]이나 [[정도전]] 등에 의해 천도가 구체화되었다고. 물론 그런 거 다 떠나서 태조 [[이성계]]가 기득권이 꼴 보기 싫어서 천도하자고 떼쓴 게 가장 크다.]. 한자표기 또한 현용 중인 往十里만 있었던 게 아니라 王十里[* 이걸 직역하여 왕십리를 '[[킹스 크로스]]'라고 일컫는 개드립도 [[http://www.ssec.or.kr/board/board_write?division=NO&idx=414|존재]]한다. 물론 그 역도 성립하여 런던,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'킹스 크로스'를 한자로 직역하여 왕십리라고 부른다.], 王尋里 등이 섞여 쓰이는 등 이미 당대에도 중구난방이었다. 이 때문인지 왕'''심'''리는 현대 기준에서는 분명 오타인데도 오타로 취급되지 않는다[* 심지어 [[정읍]]에는 진짜 왕'''심'''리가 있었다고 하니 이쯤되면 말 다 한 거다.]. 그러나 도읍의 중심예정지였던 [[한양대학교/서울캠퍼스]]는 왕십리동이 아니라 [[행당동]]과 [[사근동]]에 걸쳐져 있다. 그러니 왕십리동이 경복궁에서 십리가 아니라 한양대 캠퍼스 부지가 경복궁에서 십리인 것이다. === 변화 === 예전에는 왕십리 지역의 중심지가 법정동, 왕십리동이었으나, [[한양대]]가 왕십리로 연변에 터를 잡자 왕십리로를 따라서 한양대 앞까지 상권이 형성되었다. [[왕십리역]]엔 [[민자역사]]가 들어와 영화관과 쇼핑 구역이 형성되어있다. 1995년, [[성동구]]와 [[광진구]]가 분구하고 [[구의동]]의 성동구청이 쫓겨나 왕십리역 앞에 자리잡게 되었고, 2008년 왕십리민자역사가 완공되자[* [[http://www.bitplex.co.kr/bitplex/summary02.php|출처]]], 왕십리의 중심은 [[행당동]]에 있는 왕십리오거리 쪽으로 굳혀지게 됐다. 즉, 현재 대부분의 외지인이 부르는 왕십리라는 곳은 실제로는 왕십리동에 없고 다른 지역에 있다는 뜻이다. 예전에는 대표적인 [[서울]]의 서민 주택가였으나, 재개발로 인해 이런 서민 주택가들이 많이 사라졌다. 경원선 선로 주변의 판자촌이 있던 자리에는 서울숲더샾이 들어섰고, 왕십리도선동에는 왕십리뉴타운이 들어섰다. 나머지 지역은 아직도 서민 주택가들이 제법 있으나, 이런 곳들도 다수의 경우 [[재개발]]에 들어갔거나 재개발 준비 중이다. 또한 원룸업자들은 월세담합 + [[기숙사]] 건립 반대, 가게 점주들은 가격인상을 통해 대학생들의 자산을 즐겁게 탐닉하고 있다. 여담으로 왕십리 지역의 가장 남쪽인 행당동에는 행당○○아파트라는 이름이 많았으나, 재개발 이후 아파트들은 가까운 행당동이나 왕십리 대신 좀 더 먼 서울숲을 넣어 서울숲○○아파트[* ex. 서울숲 더샵 아파트]로 이름짓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. ~~하지만 걸어서 30분은 걸리는 게 함정~~ 살아 숨쉬는 왕십리의 분위기를 [[서울시]] 홍보대사인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가 바이올린 곡으로 연주한 왕십리 아라리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BrMDtmlF4UI|영상]]이다. == 행정적인 왕십리 == [[상왕십리동]], [[하왕십리동]], [[도선동]], [[홍익동]] 문서 참고. == 관련 문서 == * [[서울특별시/역사]] [[분류:대한민국의 지명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