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926년 사망]] 王信 ? ~ 926 [[고려]]의 [[황족]]. [[태조(고려)|태조]] 왕건의 사촌동생이며, [[왕식렴]]의 동복형제로 추정된다. 918년 왕건의 [[역성혁명]]에 가담, 그 공으로 925년 원윤(元尹)에 오르나, 같은 해 10월의 조물성 전투가 무승부로 끝나자 [[후백제]]왕 [[견훤]]의 조카 [[진호]]와 교환되어 후백제에 [[볼모]]로 갔다. 그러나 이듬해 4월 진호가 고려에서 의문사하자 이것을 [[왕건]]의 음모로 간주한 견훤에 의해 살해당했다. 왕신의 시신은 이듬해에 돌아왔고, 왕신의 동생 왕육(王育)이 시신을 맞이한다. 사후에 대광(大匡)으로 추증되고 [[안화사|안화선원]](安和禪院)에 모셔졌다. 드라마 [[태조 왕건]]에서는 김광영이 연기했는데 백제에서 인질로 온 [[진호#s-1.3|진호]]가 왕신의 형인 [[왕식렴]]에 의해 독살당하여 시체로 돌아오자 이에 노한 견훤이 왕신을 죽이려 하고, 이 때 "마지막으로 [[왕건(태조 왕건)|아국의 황제 폐하]]께 인사를 올릴 시간을 달라." 며 절을 올리는데 절을 끝내고는 곧바로 혀를 깨물고 소 달구지에 머리를 박아 자결한다. 이에 견훤은 "과연 고려 왕의 아우답다. 미련을 남기지 않고 사내답게 죽었구나." 라며 감탄하고는 고려에서 진호의 시신을 보내주었듯이 자신도 왕신의 시신을 돌려주며 화친은 깨졌다고 전하게 한다. [[분류:고려의 왕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