'''王離''' '''(? ~ ?)''' [목차] == 소개 == 왕리는 중국 [[진(통일왕조)|진나라(秦)]]의 장군이다. [[춘추전국시대]] 말기에 활약한 진나라의 [[명장]] [[왕전]]의 [[손자]]이자 [[왕분]]의 [[아들]]이다. [[시황제]] 시기에 무성후의 작위를 받았고, [[이세황제]] 시기에 변경 수비의 책임자가 되었다가 다시 반란 진압에 동원되었으나 [[거록대전]]에서 [[항우]]에게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. == 생애 == 왕리는 [[진(통일왕조)|진나라]]의 [[명장]] [[왕전]]의 [[손자]]였다.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[[시황제]] 시기에 무성후(武城侯)의 작위를 받았다. 기원전 219년, 시황제가 낭야(琅邪)를 순행할 당시에 아버지인 통무후(通武侯) 왕분 등과 함께 황제를 수행하였다. 기원전 210년, 상군(上郡)에서 북쪽의 변경을 수비하던 장군 [[몽염]]의 부장으로 있었으나, [[이세황제]]가 즉위하여 [[몽염]]의 직위를 빼앗자 그를 대신하여 변경 수비를 맡았다. 기원전 208년 9월, 왕리는 [[장한]]의 명령에 따라 섭간(涉閒)과 함께 진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조나라의 왕인 조헐과 재상 [[장이]]를 거록(鉅鹿)에서 포위하였다. 기원전 207년 10월, 왕리는 동군위(東郡尉)와 함께 [[고제(전한)|유방]]에게 패하였다. 그해 12월, 초나라의 [[항우]]가 거록에 고립된 조헐과 [[장이]]를 구원하기 위해 장하(漳河)를 건너 왕리를 포위하였다. [[거록대전]]에서 왕리는 [[항우]]와 9번을 싸웠으나 모두 패하고 보급로마저 끊어지고 말았다. 그리고 다음달인 1월 왕리는 항우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다. [[초한지]] 등 창작물에서는 항우에게 죽는 걸로 묘사되나[* 왕리의 할아버지 [[왕전]]이 [[항우]]의 할아버지 [[항연]]을 죽인 것 때문에 항우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왕리를 직접 죽이는 걸로 묘사된다.] 실제 역사에서는 항우에게 패하여 포로가 된 이후로 왕리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. == 일화 == 왕리가 처음 조나라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거록성을 포위했을 당시에 어떤 사람이 "왕리는 진나라의 [[명장]]이다. 이제 장차 강력한 진나라의 군대를 거느리고 새로 세워진 조나라를 공격할 것이니 반드시 이길 것이다."라 하였다. 그러자 다른 객(客)이 말하기를, "그렇지 않다. 무릇 장수가 3대를 이어가면 반드시 패하게 된다. 왜 반드시 패하는가? [[사망 플래그|필시 죽이고 정벌한 사람이 많으므로 그 후손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 닥치기 때문이다. 지금 왕리가 3대째 장군이다.]]"라 하였다. 그로부터 얼마 후에 왕리는 정말로 항우에게 패하여 포로가 되고 말았다.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왕리, version=18, paragraph=5)] [[분류:생년 미상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초한쟁패기/인물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