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 성명 ||왕기서(王基西) || || 이명 ||왕한성(王漢成) || || 생몰 ||[[1899년]] [[7월 7일]]~? || || [[출생지]] ||[[평안남도]] 평양부 시족면 남경동[br](현 [[평양직할시]] [[삼석구역]] 호남리) || || 사망지 ||미상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국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왕기서는 1899년 7월 7일 평안남도 평양부 시족면 남경동(현 평양직할시 삼석구역 호남리)에서 태어났다. 그는 1919년 7월 중국 유하현 고산자에서 [[신흥무관학교]]에 입교하여 독립군 교육을 받았다. 같은 해 8월 하순 교관 [[지청천]]으로부터 군자금과 독립군 모집 지시를 받고 중국 [[단둥시|안동현]]에 도착했다. 그 후 안동현에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[[엄우룡]]·김봉원(金鳳源)·[[윤세주]] 등과 함께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방법 등을 협의하였다. 1920년 상하이에 본부를 둔 의용단(義勇團)에 김순록(金淳祿)·김봉섭(金鳳燮)·정석흥(丁錫興) 등과 함께 가입했으며, 같은 해 11월부터 평남 대동군 시족면, 12월 강동군 원타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. 또한 1921년 강동군 고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, 9월 16일 평남경찰부, 평양경찰서의 연합경관대와 교전을 하다가 체포되었다. 그 후 1921년 11월 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(制令)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3월 31일 출옥하였다.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.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왕기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. 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평양직할시 출신 인물]][[분류:1899년 출생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건국훈장 애국장]][[분류:경희대학교 출신/전신 학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