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분류: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]][[분류:한국의 독립운동가]][[분류:초산군 출신 인물]][[분류:1888년 출생]][[분류:몰년 미상]][[분류:건국훈장 애국장]] || 성명 ||왕경학(王京學) || || 생몰 ||[[1888년]] ~ ? || || [[출생지]] ||[[평안도]] 초산도호부 동면 구룡동[br](현 [[자강도]] [[초산군]] 구룡리) || || 사망지 ||미상 || || 추서 ||건국훈장 애국장 || [목차] == 개요 == 한국의 [[독립운동가]].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. == 생애 == 왕경학은 1888년생이며 평안도 초산도호부 동면 구룡동(현 자강도 초산군 구룡리) 출신이다. 그는 1925년 [[만주]]로 건너간 뒤 1926년 [[참의부]]에 입대하여 제2중대에 편입되어 중대장 김용택(金龍澤) 휘하에서 활동하였다. 1926년 5월부터 12월까지 박시상(朴始相), 이영만(李永萬) 등 10명의 부원들과 함께 [[평안북도]] 초산군·[[위원군]]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하고 밀정을 처단하였다. 그러나 1928년 4월 초산경찰서 경찰에게 붙잡혀 1929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·강도방화·주거침입·강도치상미수·살인·살인미수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, 같은 해 10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.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.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왕경학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.